공룡우표매니아

엄원용

공룡우표매니아 엄원용

지역문화재 및 상징 엽 131

경인문화재 여행 .........57. 광명시 하안교회

경인문화재 여행 .................57. 광명시 하안교회 광명시 하안교회 하안교회는 지역 복음화 운동의 중심지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였다. 그 결과 하안동 화평교회, 소하동 독산동교회[현 행복한교회], 구름산교회, 가은교회, 시흥교회가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모태 역할을 하였다. 1985년 현재의 교회 건물이 건축되면서 내실을 다졌으며, 1995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해외 선교를 시작하였다. 중국 조선족과 탈북자 선교에 뜻을 두고 연길에 4개 교회와 탈북자 쉼터를 마련하고 선교사를 파견하여 한국에 취업한 조선족 자녀에게 무상으로 직업훈련을 하고 있다. 하안교회는 “교회가 예수의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아낌없이 나누어 민족을 구원하고 민족을 살리는 일들을 해낼 수 있는 참 신앙인을 키워내는..

경인문화재 여행 .....56. 광명시 광명 농악(光明農樂)

경인문화재 여행 ............56. 광명시 광명 농악(光明農樂) 광명 농악(光明農樂) 광명시는 과거 경기도 시흥군에 속했다. 이따금 장마가 지면 홍수가 범람하고 진펄이 되면서 농사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고 현지인들이 증언한다. 광명농악은 이런 지리적 조건 위에서 철산동, 소하동, 학운동 등을 중심으로 광명시의 현대적 바탕에서 성립 된 농악이다. 광명농악은 논농사, 농악, 두레가 서로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전통이 광명농악의 근간이 된다. 광명농악은 1997년 9월 30일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광명농악을 이루는 주요 인물 가운데, 바로 상쇠인 유인필柳寅畢이다. 1980년경부터 광명 지역의 철산동 광명농악을 온전하게 학습하여 상쇠 노릇을 하였다...

경인문화재 여행 .....55. 광명 영회원 기신제

경인문화재 여행 .............. 55. 광명 영회원(永懷園). 기신제(忌辰祭). 광명 영회원(永懷園). 영회원은 조선조 제16대 인조의 원자인 소현세자 빈 강씨(1611~1646, 민회빈)가 잠든 능원이다.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산141-20에 위치하고 있다. 사적 357호로 지정되었다. 민회빈은 병자호란의 패배로 청나라에 소현세자와 볼모로 갔을 때 진취적인 기상과 지혜로운 처신으로 조선의 입장을 대변하는 등 조선 궁궐의 여성상을 보여준 인물이기도 하다. 귀국후 소현세자가 죽자 인조의 후궁 조씨 등이 민회빈이 왕을 독살하고 왕실을 저주한다는 모함을 하여 1646년 사약을 받고 죽었다. 숙종 44년(1718년)에 죄가 없음이 밝혀져 다시 복원되고 고종 7년(1903년)에는 무덤을 '영회원'이라..

경인문화재 여행 .....54. 시흥 소래산 매애보살입상

경인문화재 여행 .......... 54. 시흥 소래산 매애보살입상(始興 蘇萊山 磨崖菩薩立像) 시흥 소래산 매애보살입상(始興 蘇萊山 磨崖菩薩立像) 경기도 시흥시 대야동 소래산에 있는 고려시대의 마애불이다. 2001년 9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324호 머리 높이 3.50m. 서 있는 모습의 보살상으로, 소래산 중턱의 장군바위(병풍바위)에 선으로 새겨져 있다. 시흥 소래산 마애상(始興 蘇萊山 磨崖像)으로 지정되었다가, 2010년 8월 25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마애상은 장군바위라고 부르는 암벽에 선각되어 있다. 머리에는 당초문이 새겨진 모자모양의 원통형 보관을 쓰고 있으며 작고 좁은 관대가 옆으로 휘날리고 있다. 목에는 삼도가 굵은 띠처럼 새겨져 있다. 넓은 어깨에 통견의 법의를 걸쳤고, 가..

경인문화재 여행 .....53. 시흥시 강희맹 묘 . 신도비

경인문화재 여행 .......... 53. 시흥시 강희맹 묘 . 신도비(姜希孟墓. 神道碑) 시흥시 강희맹 묘 . 신도비(姜希孟墓. 神道碑) 조선시대 초기의 뛰어난 학자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농학자인 사숙제(私淑齊) 강희맹(1424∼1483) 선생의 묘이다. 1985년 9월 20일 경기도의 기념물 제87호로 지정되었다. 묘소는 하상동 마을 뒷산에 동북향으로 안장되어 있고 근래에 새로 단장했다. 봉분은 단분(單墳)으로 부인과의 합장묘이다. 크기는 높이 3m, 둘레가 7m이다. 세종 29년(1447)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세조 9년(1463) 중추원 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성종 13년(1482)에 좌찬성에 이르렀다. 문장이 당대 으뜸이고 글·그림에도 뛰어났으며,『세조실록』,『예조실록..

경인문화재 여행 .....52. 시흥 군자봉성황제(始興君子峰城隍祭)

경인문화재 여행 ..... 52. 시흥 군자봉성황제 (始興君子峰城隍祭) 군자봉(198.4m)은 시흥시 군자동과 안산시 선부동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해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현재 경기도 남부 서해안 지역에서 무속인들의 발길이 가장 잦은 산으로 주위에는 여러 개의 굿당들이 들어서 있다. 군자봉에는 군자산성(君子山城)터와 함께 성황단이 남아 있다. 성황단은 산성이나 고을 관아의 주위에 나타나는데, 고을이나 성안[城內]의 안녕을 빌기 위해서 수령이 백성들과 더불어 위무(慰撫)했던 곳이다. 군자봉에는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과 부인 안씨 그리고 장모 홍씨를 성황신으로 모신다고 전하는데, 그 역사적 진실은 단언할 수 없으며, 학자들에 따라 다양한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시흥 : 시흥군자봉성황제(始興君子..

경기문화재 여행 .....51. 오산시 오산 보적사(烏山 寶積寺)

경기문화재 여행 ......... 51. 오산시 오산 보적사(烏山 寶積寺) 오산 보적사(烏山 寶積寺) 1988년 7월 27일 전통사찰 제34호 지정되어 있는 보적사는, 용주사 본말사지에 의하면 보적사는 창건당시 이세계 중생의 질병치료, 수명연장, 재화 소멸, 의복, 음식 등을 만족케하고 부처의 행을 닦아 무상보리의 진리를 터득케 한다는 약사여래를 모신 약사전을 정전으로, 독산성의 역사와 함께 오랜 세월을 같이 했으나 1990년 도광정운(道光正云)스님의 불사 때 석가여래불을 모신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창정전이 건립되면서 대웅전으로 명칭이 변경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보적사 또한 다른 사찰들처럼 여러 차례 전란을 겪으면서 중건과 재건을 거듭 하였고 현재는 대웅전과 3층 석탑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산..

경기문화재 여행 .....50. 오산시 오산시권리사(烏山市闕里祠)

경기문화재 여행 ....... 50. 오산시 오산시권리사(烏山市闕里祠) 오산시권리사(烏山市闕里祠)경기도 기념물 제147호. 오산시에 있는 조선전기 문신 공서린의 사당.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식 맞배지붕의 건물. 경기도 기념물 제147호. 이 곳은 원래 조선 중종 때의 문신으로 경기도관찰사 등을 지낸 공서린이 서재를 세우고 후학들에게 강의를 하였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 당시 뜰안 은행나무에 북을 달아놓고 문하 제자들에게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도록 깨우치며 교수하였는데, 그가 죽은 뒤 그 나무가 자연 고사하였다고 한다. 그 뒤 정조가 화산(花山)에서 남쪽 멀리 바라보니 많은 새들이 슬피 울며 모여들므로 괴이하게 여겨 그곳에 행차해 보니, 죽었던 늙은 은행나무에 싹이 트고 있었다. 오산시권리사(烏..

경기문화재 여행 .....49. 오산시 경기도당굿

경기문화재 여행 .....49. 오산시 경기도당굿(중요무형문화재 제 98 호) 오산시 경기도당굿(중요무형문화재 제 98 호)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인 경기도당굿은 서울을 비롯한 한강 이북지방과 수원, 인천 등지에서 마을의 평화와 풍년을 목적으로 하는 마을굿이다. 도당굿은 매년 또는 2년이나 그 이상의 해를 걸러, 정월 초나 봄과 가을에 정기적으로 행해지는 굿을 말한다. 현재의 경기도당굿은 경기도 일대의 한강 이남지역에 전해져 오는 마을굿으로, 지금은 부천의 장말에서만 완전한 형태의 경기도당굿을 볼 수 있다. 경기도당굿의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마을 동산의 소나무 숲 등에 300년이 넘었다고 전해지는 도당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신 ‘당가리’나, 도당신을 상징하는 신목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경기문화재 여행 .....48. 수원시 팔달로의 수원종로교회

경기문화재 여행 ..... 48. 수원시 팔달로의 수원종로교회(水原鍾路敎會) 수원종로교회(水原鍾路敎會) 기독교가 수용된 이래 수원 지역은 선교지역 분할협정에 따라 미감리회의 선교지역이 되었다. 1893년부터 스크랜턴(W. B. Scranton) 선교사가 담당하다가, 1898년부터는 스웨어러(W. C. Swearer, 徐元輔) 선교사가 맡아 선교활동을 하였다. 1899년 5월 스크랜턴이 파견한 감리교인 ‘서너 명’이 수원 읍내로 이사와 정착하였고, 수원 감옥에 갇혀 있던 기독교인들이 감옥 안에서 신앙공동체를 형성하였다. 김동현은선교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1900년 가을 수원 읍내에 장소를 매입했다가, 화령전과 가깝다는 이유로 체포되었으나, 계약을 취소한 후 석방되었다. 그리고 당시 이 장소만 아니면 수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