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우표매니아

엄원용

공룡우표매니아 엄원용

초일,전자우편외 기타

대한민국 공군 창군 70주년. 기념우표 초일커버(FDC)

공룡우표매니아 2019. 10. 2. 04:00

대한민국 공군 창군 70주년. 기념우표  초일커버(FDC)



발행일 : 2019. 9. 20  우표번호 : 3420  디자이너 : 박은경  인쇄 / 색수 / 특수처리 : 평판 / 4도 / 은박

용지 : 평판 원지    디자인 : 조종사와 전투기     인쇄처 : 한국우편사업진흥원 (Carto


                       

              우표번호 : 3420   디자인 : 조종사와 전투기                    기념우편날짜도장

  대대적인 국가 행사와 각종 지역 축제에서 펼치는 에어쇼를 볼 때면 언제나 감탄하게 됩니다. 대한민국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선보이는 멋진 곡예비행과 조직적인 팀워크, 고난도의 비행 기량은 국민의 환호를 받을 만한 우리 공군의 자랑입니다. 급변하는 안보 환경 속에서 국가 방위의 핵심 역할을 맡은 대한민국 공군의 창군 70주년을 기념하여 우정사업본부가 우표를 발행합니다.

  대한민국 공군의 시작은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습니다. 육군, 해군과 달리 독립된 하나의 군(軍)으로서 그 필요성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육군 소속 ‘항공부대’로 출발했습니다. 1945년 해방 이후 한반도의 남쪽을 통치했던 미군정이 “육해군만 있으면 됐지, 한국에 독자적인 항공대는 필요 없다.“라고 하며 공군 창군을 적극적으로 반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항공경력자들의 오랜 노력과 최용덕, 이영무 등 이른바 ‘공군 창군 7인‘의 끈질긴 요구로 오늘날 공군의 모체가 된 ’육군항공대‘가 설치되었고, 미래의 공군 간부를 양성하기 위한 ’육군항공사관학교‘까지 설립되었습니다. 그러다 1949년 10월 1일, 대한민국 공군이 육군에서 독립하였고, 그날부터 공군사관학교도 정식으로 발족했습니다.

 이로써 1,600여 명의 병력과 20대의 연락기를 기반으로 대한민국 공군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으로 여겨졌지만 여러 사람이 노력한 끝에 출범한 우리 공군의 역사. 그중에서도 공군 독립의 근거를 마련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인 최용덕 장군은 오늘날 ’공군의 아버지‘라 불립니다.

 1950년 5월 14일, 국민의 성금으로 한국이 캐나다에서 항공기 10대를 도입한 역사적인 날, 그는 제2대 공군사관학교장으로 임명됐습니다. 6·25전쟁 당시 공군참모총장이었던 그는 “우리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행기는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대한민국 최초의 경비행기 부활호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전쟁 중에도 교육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인재를 배출해온 공군사관학교와 이를 바탕으로 끈질긴 생명력을 잃지 않은 대한민국 공군이 어느덧 70년의 전통과 역사를 간직하게 됐습니다. 대한민국 공군 창군 70주년 기념우표로 자주 국방을 위한 우리 공군의 활약을 기대합니다.

  공중작전을 주임무로 하는 대단위 군조직. 한 나라 안에서 공중전과 제공권 장악을 조직되고 운영되는 군대조직 전체를 공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의 <국군조직법>에서는 "공군은 항공작전을 주임무로 하고 이를 위하여 편성되고 장비를 갖추며 필요한 교육·훈련을 한다."(제3조 4항)고 규정하고 있다.

  고대 국가 이전부터 기원한 육군이나 해군과 달리, 뒤늦게 공중에 머무를 수 있는 항공기 기술이 개발된 20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공군의 개념이 나타났다. 공군이 본격적이며 정규적인 군사조직으로 발달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해서이다. 육군이나 해군을 지원하는 항공부대는 비록 전투기 등의 항공기를 구비하고 공군과 유사한 항공전술을 사용하지만 공군에 포함하지 않는다

  1903년 12월 미국의 라이트형제가 최초로 동력비행에 성공한 이후 10년이 지나자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비행기를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육군과 해군을 지원하는 항공대가 만들어졌다. 이 무렵 항공대의 주요 활동은 정찰 목적이었는데, 항공기의 고도가 낮은 데다가 속도도 느려서 지상군의 화력에 맞아 격추되는 경우가 많았다.

  점차 고도를 높일 수 있게 되면서 항공기에 탑재한 폭탄을 수동으로 떨어뜨려 폭격을 하는 용도로도 활용되었다. 항공기가 정찰용과 폭격용으로 활용되기 시작하자, 자국의 영공을 침범한 적국의 항공기를 격퇴하려는 전투 목적의 항공기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1918년 영국에서 육군과 해군의 항공대를 통합하여 공군을 창설하면서 본격적인 공군의 시대가 열렸다. 당시 영국 공군의 임무는 적국 항공기의 영공 침입 방지를 위한 방공과 적 지역에 침투하여 폭격임무를 수행하는 일 등이었다. 이 무렵의 항공기는 여전히 위 아래 날개가 한 쌍인 복엽기로, 프로펠러 추진형이었으며, 조종사와 사수를 따로 태우는 2인승으로 제작되었다. 1930년대까지 전투기는 계속 개량되었지만, 조종사의 뛰어난 조종 기술을 바탕으로 공중전에서 상대방의 꼬리를 물어 기총사격하여 격추시키는 전술 자체의 큰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1930년대 후반 이후, 영국과 미국, 프랑스, 독일 등에서 전파를 이용해 항공체의 위치를 탐지하는 레이더 기술이 실용화되면서, 공중전의 양상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당시 프랑스, 폴란드, 소련 등도 공군력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초기에는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 급격하게 발달한 독일 공군에게 열세를 면치 못했다. 자신감을 얻은 독일 공군은 영국 본토에 대한 침공을 강행했으나, 일찍이 공군을 창설해 압도적인 항공전술과 함께 방어용 레이더 시스템의 우위를 갖고 있던 영국이 독일의 침공을 일방적으로 격퇴하면서 그 저력을 보여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반 시제품이 개발되던 제트엔진이 전투용 항공기에 채택되어, 미국에서는 제트기인 F-86 세이버, 소련에서는 MiG-15를 개발했다. 1950년 발발한 6.25 전쟁은 이 두 전투기 사이의 우월을 가리는 시험장과 같았는데, 레이더를 장착한 F-86 세이버의 압도적인 우세로 판가름이 났다. 제트전투기가 전투기의 주력으로 떠올랐지만, 프로펠러 기종이었던 미국 공군의 폭격기 B-29는 이후에도 한동안 제 역할을 수행했으며, 6.25 전쟁 발발 초기 평양과 원산 등 북한 주요 도시에 폭탄을 투하, 북한의 전세를 꺾는 데 일조했다.

  1960년대 이전까지 공군의 주요 전력은 폭격기와 전투기 등으로 구성되었으나, 1960년대 중반 발발한 베트남전에서는 새로운 두 가지 무기가 추가되었다. 회전익 항공기인 헬리콥터가 지상군을 지원하는 주요 기종으로 채택되면서 각광을 받았다. 물론 대부분의 헬리콥터는 해군항공대나 육군항공대 소속이었으나 공중전력의 변화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었다. 또 하나의 무기는 미사일이었다. 일반 로켓이 발사 후 통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과 달리, 미사일은 발사 후 목표를 자동추적하거나 유도추적하여 격추시키는 기능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독일에 의해 개발된 V1, V2 시리즈가 미사일의 효시로, 베트남전을 전후하여 레이더 기술과 미사일은 공군전력의 기본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1990년 발발한 걸프전에서 미국 공군은 스텔스 공격기, 패트리어트 미사일, 크루즈 미사일, AH-64 아파치 등 첨단 항공무기를 보여주면서 현대전의 새로운 양상을 제시했다. 스텔스 기술은 특수 도료와 설계를 바탕으로 적의 레이더에 탐지가 되지 않도록 하는 기술로, 이라크의 방공망을 뚫고 공격과 폭격이 이어지면서 그 효과를 전 세계에 보여주었다.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첨단 항공무기는 공군력이 현대전의 양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확장되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한국의 공군은 1948년 5월 5일 육군 항공부대로 창설된 후 1949년 10월 1일 독립하여 공군으로 창설되었다. 초기에는 AT-6 훈련기 10대로 시작하여 6.25 전쟁 발발 후 미국으로부터 P-51 머스탱 10대를 인도하여 항공지원 업무를 담당했으며, 이후 F-86, F-5A 등의 항공기를 도입 운용했다. 1991년에는 육군 소속이었던 방공유도탄사령부가 공군에 편입되었다. 2017년 기준 F-15K, FA-50, F-5E/F, F-4E, F-16C/D 등을 주력기로 보유하고 있다.


가실때 공감 살짝 눌러주고 가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