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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인 여행....737. 서울시 강서구 등촌동, 허준과 동의보감.

공룡우표매니아 2023. 3. 21. 03:00

관광인 여행....................... 737. 

서울시 강서구 등촌동, 허준과 동의보감(許浚 東醫寶鑑)

 

허준(許浚 1539 ~ 1615)

    허준은 동의보감의 집례에서 말하기를 "중국의 동원은 북의라 하고 단계는 남의라 했다. 의에 남북의 이름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동방에 치우쳐 있고 의약의 도가 연면하게 끊이지 않은, 즉 우리나라의 약을 일러 동의라고 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허준이 중국의학과 대별되는 우리의 전통의학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이것을 바로 세우기 위한 염원을 품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말이다. 이것이 그의 주된 저술인 "동의보감" 의 이름에서 동의라는 말을 드러낸 이유이기도 하다.

허준과 동의보감(許浚 東醫寶鑑)

    허준이 활약하기 전부터 우리나라는 중국의 난삽한 의학이론에 침식되어 백성들이 병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중국과는 자연환경, 자라는 동식물, 음식, 질병 등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의학이 발전해야만 했으나 당시만연한 사대주의 사상은 중국에 경도되어 독자적인 의학이 뿌리내리지 못했다. 이런 환경에서 허준은 중국의 의서를 참고할 때도 반드시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우리 현실에 맞는 부분만 채택했다. 당대에 최고로 꼽히던 진단서는 중국의 고양생이 쓴 "찬로맥결" 이었는데 허준은 이 책을 동의보감 저술시에 전혀 인용하지 않았다. 그외에도 허준은 우리땅에서 나는 향약을 중시하고 향약을 쉽게 쓸 수 있도록 그의 저술에서 자세하게 서술하려고 했다. 허준이 민족의학의 전통을 분명하게 세운 후 비로소 민족의학은 그 토대를 이루었다. (다음백과)

    허준(許浚) :  동의보감으로 유명한 조선 중기의 명의. 본관은 양천, 자는 청원, 호는 귀암이며 서자로 태어나 중인이나 서얼의 업으로 되어 있던 의학의 길을 택하여, 이미 20대에 뛰어난 의술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30세에 어의로 선임되었고, 동양 최대의 의서라는 〈동의보감〉의 찬집에 노력하여 1610년(광해군 2)에 이를 펴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이 의주까지 피신하는 사태가 벌어졌을 때, 허준은 선조의 건강을 돌보았다. 이때의 공로로 허준은 뒷날 공신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정1품까지 승급했다. (다음백과)

    동의보감(東醫寶鑑) : 허준의 책 중 가장 주목할 책은『동의보감』이다. 이 책은 왕명으로 1596년(선조 29)에 시작되어 14년 후인 1610년(광해군 2)에 완성을 보아 1613년(광해 5)에 출간되었다. 허준은 한국의학사, 동아시아 의학사, 세계의학사에 크게 기여했으며, 조선 의학사의 독보적인 존재로 동의(東醫), 즉 한국의학의 전통을 세웠다. 특히, 『동의보감』은 당대 최고의 고급 의학으로서 조선 의학의 통일을 가능케 했고, 언해본 의서는 의학 대중화의 촉진제가 되었다. 

서울강서 : 허준과 동의보감(許浚 東醫寶鑑)

    『동의보감』은 출간이후 중국과 일본에서 동아시아 전통의학의 핵심을 잘 잡아내어 적절한 표준을 세운 것으로 평가받았다. 이 책은 중국에서 대략 30여 차례 출간되었고, 일본에서도 두 차례 출간되었다. 허준의 면밀한 성홍열 관찰 보고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최초이고, 세계적으로도 최초의 그룹에 속하는 것이다. 이로써 허준은 세계질병사 연구의 선구자 중 일인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20세기 후반 이후 한국에서 허준은 소설과 드라마로 재조명되어 커다란 인기를 끌었다. 2009년에는 『동의보감』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세계인과 같이 나누게 되었다. 2005년 3월에는 허준박물관이 개관되어 허준과 『동의보감』을 알리는 교육과 전시행사가 있었다. 또한 서울 강서구를 중심으로 매년 ‘허준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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