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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열차분야지도 기념우표 초일자료(M/C. FDC.)

공룡우표매니아 2022. 7. 2. 03:00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 기념우표 초일자료(M/C. FDC.)

우표발행일 : 2022. 6.  24.    우표번호 : 3599. ~ 3605.     디자인 : 천상열차분야지도
디자리어 : 정은인쇄 및 색수 :  평판 / 4도   용지 : 은색 메탈 스티커 용지 
인쇄처 :한국우편사업진흥원/ Royal Joh. Enschede. 

    농업이 국가 경제의 근간이 되었던 우리나라에서 천문학은 매우 중요한 학문이었습니다. 해와 달의 움직임, 철마다 달라지는 별자리 등을 살펴 시간과 절기를 정확히 알아내는 것이 한 해 농사의 성패를 좌우했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왕들은 정치 질서의 근원을 하늘의 이치에 두고 왕권 강화와 정치 안정을 위해 천문학을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태조 이성계는 건국 직후부터 천문학에 관심을 기울이며 많은 성과를 이뤄냈고,과학적 창의성이 담긴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완성했습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이름은 ‘하늘의 형상을 12개의 구역별로 나눠 순서대로 배열해 그린 그림’이라는 뜻입니다. 1392년에 고려 왕조가 무너지고 새로운 왕조인 조선이 개국할 때, 백성들은 흔쾌히 새 왕조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성난 민심을 파악한 태조는 고려 왕조를 지탱해왔던 불교를 배척하고 성리학을 새로운 통치 이념으로 삼았습니다. 하늘의 뜻에 따라 백성을 제대로 통치해야 한다는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은 태조는 조선 개국이 ‘천명(天命)’에 의한 것임을 밝히기 위해 천문도를 제작하려 했습니다. 

맥시멈 카드(M/C)

   이 무렵 때마침 한 백성이 옛 평양성에 있었던 돌판에 새긴 천문도의 탁본을 기증했고, 태조는 매우 기뻐하며 이 천문도를 바탕으로 새롭게 고쳐 돌판에 새길 것을 명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태조 4년(1395), 돌판에 별자리를 새겨서 만든 천상열차분야지도입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중심의 원형 안에는 별자리를 그린 천문도가 있고, 그 주위에는 천문도를 설명하는 다양한 내용의 그림과 해설이 있습니다. 한 면에 새겨진 글자 수는 2,932자, 전체 별의 개수는 1,467개입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그 이후로도 석각본, 목판본, 필사본 등으로 제작 및 보급되었는데, 그중 가장 오래된 태조 석각본은 과학 유물로서는 처음으로 1985년에 국보로 지정되었고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국보 제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 석각(石刻)은 조선 태조 4년에 태조의 명에 따라 권근 등 12인의 천문학자들이 수년간 노력으로 천문도를 완성하고 이를 대리석 돌판에 새긴 것으로서, 중국의 순우천문도(淳祐天文圖, 1247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석각천문도이다. 상단의 천문도 원 안에는 모두 1,467개의 별이 기록되어 있으며, 하단에는 ‘天象列次分野之圖(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천문도의 명칭과 권근(權近)의 발문과 우주론, 제작 참여자들의 이름과 관직명 등이 기록되어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 석각(石刻)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대리석에 하늘의 별자리를 새긴 석각천문도이다. 대리석의 앞면 윗부분에는 길이 141㎝, 폭 85㎝로 직사각형의 테두리가 있고 그 속에 지름 76㎝의 천문도(天文圖) 원이 그려져 있다. 천문도 원의 중앙에는 북극이 위치하고, 이를 중심으로 총 1,467개의 별들이 점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각 별자리의 이름이 해당되는 위치에 새겨져 있다. 이들 별들은 밝기에 따라 크기를 달리하여 새겨져 있다. 또한 이 천문도에는 북극을 둘러싼 주극원(週極圓)과 28수(宿)를 구획한 경선(經線), 적도(赤道)와 황도(黃道), 은하수(銀河水) 등이 그려져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아랫 부분에는 상단 천문도 부분과 46㎝의 간격을 두고 ‘天象列次分野之圖(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천문도의 이름이 큰 글자로 새겨져 있다. 또한 그 아래에는 다시 2단으로 구분하여 윗단에는 우주론에 대한 기사와 28수 각각의 거극분도(去極分度, 즉 90도-적위)가 기록되어 있고, 아랫단에는 이 천문도가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과 경과, 그리고 유방택(柳方澤, 1320∼1402)을 비롯한 제작에 참가한 사람들의 관직 성명 등이 적혀 있다.

   한편, 이 천상열차분야지도가 과연 태조 4년(1395)에 새겨진 것이 확실한지를 의심하는 주장들도 있다. 권근의 도설에는 이 천문도가 홍무(洪武) 28년, 즉 태조 4년(1395) 12월에 새겼다고 적혀 있다. 이러한 권근의 기록을 토대로 그동안 ‘천상열차분야지도 석각이 태조 4년에 새겨졌다.’는 생각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순지(李純之)의 『제가역상집(諸家曆象集)』에는 세종 15년(1433)에 칠정(七政)과 28수의 거극분도(距極分度: 적도좌표계에서 북극과 떨어진 도수)를 측정하고 고금의 천문도를 비교·검토하고 수치들을 수시력(授時曆)을 토대로 수정하여 돌에 새겼다고 전하고 있다. 『동국문헌비고』와 『서운관지』 등에는 이 이순지의 기록을 토대로 세종 15년에 새로운 천문도를 돌에 새겼다고 적고 있다. 

   그들은 위에서 소개한 기록들과 더불어 토대로 새로운 왕조가 개창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태조 4년에 서운관에서 혼효중성과 별자리의 위치들을 새롭게 관측하여 고치고 이를 반영하여 석각본으로 새길 정도의 물적, 심리적,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을 것이라는 정황을 토대로 ‘천상열차분야지도 석각’이 태조 4년에 새겨진 것이라는 일반적 통념에 의심을 제기한다. 그러면서 태조대부터 준비된 천문도의 수정 작업이 세종대에 이르러서야 완료되어 석각으로 새겨지게 되었다는 것으로 추정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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