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우표매니아

엄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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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145

관광인 여행...896. 전라남도 여수시 군자동, 진남관.

관 광 인 여 행.................................. 896. 전라남도 여수시 군자동, 진남관(鎭南館). 진남관(鎭南館) 조선 후기의 군사용 목조건물. 1599년 삼도수군통제사 이시언이 전라좌수영 객사의 주사로 지은 것인데, 1716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718년 전라좌수사 이제면이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역대 임금의 궐패를 봉안하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군수가 참배를 하고, 국경일이나 나라의 제사 때 관민이 모여 봉도식을 올리던 곳으로 여수시의 국보 문화재이며, 1963년에 보물 제324호로 지정되었고, 이후 2001년 국보 제304호로 승격되었다. (다음백과) 여수교동 : 진남관(鎭南館) 평면구조는 앞면 15칸, 옆면 5칸이며 단층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바닥은 우물마..

관광인 여행.....709. 경상남도 김해시, 김수로 왕릉

관광인 여행..................... 709. 경상남도 김해시, 김수로 왕릉(金海 首露王陵) 김해 : 김수로 왕릉(金海 首露王陵) 수로왕릉은 사적 제73호로, 가락국(駕洛國)의 초대 국왕이며, 김해 김씨의 시조인 수로왕의 능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73호로 지정되었다. 가락국(금관가야)의 시조이자 김해 김씨의 시조인 수로왕(재위 42∼199)의 무덤으로, 납릉(納陵)이라고 부른다. 수로왕에 대한 이야기는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전하고 있으나, 무덤이 정확히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무덤의 높이는 5m의 원형 봉토무덤인데, 주위 18,000여 평이 왕릉공원으로 되어 있다. 왕릉 구역 안에는 신위를 모신 숭선전과 안향각·전사청·제기고·납릉정문·숭재·동재·서재·신..

관광인 여행.....704.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관왕묘(東關王廟)

관광인 여행...................... 704.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관왕묘(東關王廟) 서울숭인 : 동관왕묘(東關王廟) 동묘의 건축은 남묘·북묘 등 서울에 건립된 관왕묘 가운데 가장 웅장하고 거대한 대표적인 건물로서 건축양식은 다포계의 통성을 준수한 평범한 가구의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천장은 연등천장이며 처마는 겹처마로 되어 있다. 마루는 양성을 하고 취두와 용두를 각각 배치했다. 대문은 남면 중앙에 내었는데 정면 5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기와지붕으로 지면보다 별로 높지 않은 축단 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가운데 3칸은 판문을 달아 출입할 수 있게 하고 좌우 1칸은 사고석으로 벽을 쳤으며 마루를 깔고 살문을 단 방을 만들었다. 동묘의 건축양식은 우리나라 건물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특수..

관광인 여행 .....590.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릉(宣陵)

관광인 여행 ........................590.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릉(宣陵) 서울삼성 : 선릉(宣陵) 선릉은 제9대 성종(1457~1494)과 계비 정현왕후(1462~1530) 윤 씨의 능으로 동원이강릉이다. 각기 다른 능침을 갖고 있지만 홍살문, 정자각은 하나다. 앞에서 보면 좌측이 성종의 능, 우측이 정현왕후의 능이다. 성종의 봉분에는 십이지 신상이 새겨진 병풍석과 난간석이 있다. 특이한 점은 세조의 "석실이 유해무익하니 원·능은 석실과 병풍석을 세우지 마라"라는 유지에 따라 석실은 만들지 않았지만 병풍석을 세웠다는 점이다. 병풍석의 면석에는 연꽃무늬, 인석에는 해바라기와 모란 무늬가 조각되어 있으며 12면에 십이지 신상을 조각해 방위를 표시했다. 원래 십이지 신상은 동물이 뚜렷하..

관광인 여행 ........ 572. 경기도 김포시 중봉 조헌과 우저서원

관광인 여행 ................... 572. 경기도 김포시 중봉 조헌과 우저서원(重峯趙憲牛渚書院) 김포 : 중봉 조헌과 우저서원(重峯趙憲牛渚書院) 조헌(1544년 ~ 1592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유학자이자 경세사상가, 의병장이다. 조선국 공조좌랑 등을 지냈다. 임진왜란 당시 금산에서 700명의 의병을 이끌고 끝까지 분전했으나 중과부적으로 모두 전사했다. 정치적으로는 기호학파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평생을 직언으로 일관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5월에 격문을 띄우고 의병을 모아 차령에서 왜군을 물리쳤다. 그후 다시 의병을 모아, 8월 1일 영규의 승군과 같이 청주성을 수복했다. 왜적이 충청도와 전라도를 빼앗으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금산으로 향했으나, 충청도순찰사 윤국형과의 의견대립과..

관광인 여행 ...... 546. 경기도 광명시의 이원익 선생과 관감당.

관광인 여행 ............. 546. 경기도 광명시의 이원익 선생과 관감당(李元翼先生 觀感堂) 광명소하 : 이원익선생과 관감당(李元翼先生 觀感堂) 이원익은 1569년(선조 2) 별시문과에 합격하여 관직에 오른 후 1573년 성절사(聖節使)의 질정관(質正官)으로 중국에 다녀왔으며, 1575년 이후 정언(正言)·헌납(獻納)·사간(司諫) 등을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 때는 평안도 도순찰사로서 왕의 피난길을 선도하고 군사를 모아 적군과 싸웠으며, 1593년 평양탈환 때 공을 세우고 변무사(辨誣使)로 명에 다녀오는 등 큰 활약을 하여 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책훈되고 완평부원군(完平府院君)에 봉해졌다.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고 청백리에 피선되었으며 궤장(几杖)이 하사되었다. 이원익 선생묘는..

관광인 여행 ..... 473. 서울시 은평구의 북한산성과 파발

관광인 여행 ..... 473. 서울특별시 은평구의 북한산성과 파발(北漢山城 擺撥) 서울은평 : 북한산성과 파발(北漢山城 擺撥) 북한산성은 백제가 위례성에 도읍을 정한 뒤 도성을 지키기 위해 쌓은 포곡식 석축산성으로 132년에 축조했다. 삼국이 모두 군사요지로 여겨 치열한 쟁탈지가 되었는데, 475년 고구려의 장수왕이 이 성을 함락하고 개로왕을 전사시킴으로써 백제는 웅진성으로 도읍을 옮겼다. 그뒤 553년 신라가 북한산성을 차지하고 이곳에 진흥왕순수비를 세웠다. 603년 고구려군이, 661년 고구려 장군 뇌음신이 말갈군과 함께 포위 공격을 했으나 격퇴당했다. 고려시대 현종이 성을 증축했으며, 1232년 이곳에서 몽골군과 격전을 벌였다. 조선시대에는 1711년 대규모의 축성 공사를 실시해서 석성을 완성시켰..

관광인 여행 ..... 454. 서울특별시 은평구의 파발(擺撥)

관광인 여행 ..... 454. 서울특별시 은평구의 파발(擺撥) 서울은평 : 파발(擺撥) 조선은 본래 군사 통신제도로서 봉수제를 갖추고 있었으나, 임진왜란을 치르면서 파발제의 필요성을 느끼고 1597년(선조 30)에 이를 설치하게 되었다. 파발에는 말을 타고 연락하는 기발과 사람이 속보로 걸어서 연락하는 보발이 있었다. 이중 기발은 25리마다 참을 설치하고 매참에 발장 1명, 색리 1명, 파발군 5명, 말 5필을 두었다. 보발은 30리마다 참을 두고 발장 1명과 파발군 2명을 배치했다. 파발은 서울에서 의주에 이르는 서발, 서울에서 경흥까지의 북발, 서울에서 동래에 이르는 남발 등 3대로를 중심으로 정비되었다. 참의 설치 수는 〈만기요람〉에 따르면 서발에는 직로에 38참(경기 7참, 황해도 13참, 평안..

관광인 여행.... 429.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현풍 곽씨 십이정려각

관광인 여행.... 429.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현풍 곽씨 십이정려각(玄風郭氏十二旌閭閣) 달성 : 현풍 곽씨 십이정려각(玄風郭氏十二旌閭閣) 정려각은 충신, 효자, 열녀 등을 기리고자 정문(旌門)을 세우고 표창하기 위해 건립한 상징적인 건물이다. 그 내부에 정려비나 현판처럼 만든 정려기(旌閭記)를 모신다. 현풍 곽씨 십이정려각은 유교 도덕의 기본이 되는 삼강(三綱)을 지킨 곽씨 집안 12인을 기리는 정려비이다. 정려각에는 1598년(선조 31)부터 영조 임금(재위 1724~1776) 때까지 곽씨 일문에 포상된 12인의 정려가 모셔져 있다. 정려가 내릴 때마다 정려각을 세우던 것을 1725년 이후 이들 정려를 현재의 자리에 모아 세웠다. 정려각 안에는 2개의 비석과 12개의 현판이 있다. 건물과 현판은 최근..

관광인 여행.... 397. 서울특별시 강남구의 선릉(宣陵)

관광인 여행.... 397. 서울특별시 강남구의 선릉(宣陵) 서울삼성 : 선릉(宣陵) 조선시대의 성종과 정현왕후 윤씨(貞顯王后尹氏)의 능으로, 사적 제199호이며, 1495년(연산군 1)에 조성되었다. 1530년(중종 25) 정현왕후 윤씨가 사망하자 그 옆에 윤씨의 능을 조성했다. 세조의 유교, 즉 "원(園)·능에는 석실이 유해무익하니 석실과 사대석을 쓰지 말라"는 유언에 따라 왕릉에는 석실을, 왕후릉에는 병풍석을 만들지 않았다. 그밖의 상설배치물은 〈국조오례의〉식의 기준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선릉 앞 문인석의 신장은 3m 내외로 봉분의 높이와 비슷하며 얼굴은 중후한 느낌을 주도록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몸체와 비교하면 비율이 맞지 않고 사각주에서 가공한 조각품이라는 느낌이 든다. 모자의 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