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우표매니아

엄원용

공룡우표매니아 엄원용

임진왜란 148

관광인 여행....1.085, 서울특별시 종로구 숭인동, 동관왕묘.

관 광 인  여 행....................1.085, 서울특별시 종로구 숭인동, 동관왕묘. 동관왕묘(東關王廟).    동관왕묘 또는 동묘는 중국 촉나라의 장수 관우(關羽)를 모신 관왕묘로, 지금의 서울시 종로구 숭인동에 있는 사당. 임진왜란 때 관우의 혼이 때때로 나타나 조선과 명나라 군을 도왔다 하여 명나라 신종 황제의 명에 따라 건립하여 1601(선조 34)년에 준공되었다. 단층 정자형(丁字形)의 기와지붕 집으로, 1963년 1월 21일에 대한민국의 보물 제142호로 지정되었다.서울숭인 : 동관왕묘(東關王廟).    임진왜란때 조선 땅에서 싸운 명나라 장수들은 관우의 신령을 보는 체험을 하고 곳곳에 관왕묘를 세웠다. 이 보고를 받은 명나라는 전쟁이 끝난 뒤 조선에 관왕묘를 지으라는 요청을..

관광인 여행...989.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김삿갓면 진벌리, 고씨동굴.

관 광 인  여 행.................. 989.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김삿갓면 진벌리, 고씨동굴. 영월고씨굴(寧越高氏窟)      영월군에 있는 석회암 동굴이다. 4억년 전부터 형성되었으며, 길이는 6.3 km에 달한다. 1969년 6월 4일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219호로 지정되었다. 고씨굴은 남한강 상류에 위치해 있으며 임진왜란 때 고씨 일가족이 이곳에 숨어 난을 피하였다하여 "고씨굴"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위키백과)영월 : 고씨동굴(高氏窟)     1966년 4월 한국동굴학회가 이끄는 한-일 합동조사단에 의해 알려지게 되었으며, 전체 길이는 약 6 km에 이른다. 동굴 주변의 지질은 고생대 초기에 형성된 조선 누층군 막골층과 고성셰일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동굴은 석회암 ..

관광인 여행...983. 서울특별시 종로구 숭인동, 동 관왕묘.

관 광 인  여 행....................... 983.  서울특별시 종로구 숭인동, 동 관왕묘. 동관왕묘(東關王廟)     동관왕묘는 중국 촉나라의 장수 관우, 즉 관왕을 모신 관왕묘로, 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묘앞역 근처에 있다. 1963년 1월 21일에 보물 제142호로 지정되었다. 줄임말을 써 '동묘'라고 부르기도 하고 공자를 모시는 문선왕묘(文宣王廟)를 줄여 부르는 문묘(文廟)에 대응해 무묘(武廟)라고도 불린다. (나무위키)서울숭인 : 동관왕묘(東關王廟)     중국 관우(關羽)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으로서 임진왜란 뒤인 1601년(선조 34)에 세워졌다. 정식명칭은 동관왕묘(東關王廟)이며, 조선 말 관왕을 관제(關帝)로 숭상하여 관제묘라고도 하였다. 관왕묘는 공자(孔子)를 모시..

관광인 여행...896. 전라남도 여수시 군자동, 진남관.

관 광 인 여 행.................................. 896. 전라남도 여수시 군자동, 진남관(鎭南館). 진남관(鎭南館) 조선 후기의 군사용 목조건물. 1599년 삼도수군통제사 이시언이 전라좌수영 객사의 주사로 지은 것인데, 1716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718년 전라좌수사 이제면이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역대 임금의 궐패를 봉안하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군수가 참배를 하고, 국경일이나 나라의 제사 때 관민이 모여 봉도식을 올리던 곳으로 여수시의 국보 문화재이며, 1963년에 보물 제324호로 지정되었고, 이후 2001년 국보 제304호로 승격되었다. (다음백과) 여수교동 : 진남관(鎭南館) 평면구조는 앞면 15칸, 옆면 5칸이며 단층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바닥은 우물마..

관광인 여행.....709. 경상남도 김해시, 김수로 왕릉

관광인 여행..................... 709. 경상남도 김해시, 김수로 왕릉(金海 首露王陵) 김해 : 김수로 왕릉(金海 首露王陵) 수로왕릉은 사적 제73호로, 가락국(駕洛國)의 초대 국왕이며, 김해 김씨의 시조인 수로왕의 능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73호로 지정되었다. 가락국(금관가야)의 시조이자 김해 김씨의 시조인 수로왕(재위 42∼199)의 무덤으로, 납릉(納陵)이라고 부른다. 수로왕에 대한 이야기는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전하고 있으나, 무덤이 정확히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무덤의 높이는 5m의 원형 봉토무덤인데, 주위 18,000여 평이 왕릉공원으로 되어 있다. 왕릉 구역 안에는 신위를 모신 숭선전과 안향각·전사청·제기고·납릉정문·숭재·동재·서재·신..

관광인 여행.....704.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관왕묘(東關王廟)

관광인 여행...................... 704.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관왕묘(東關王廟) 서울숭인 : 동관왕묘(東關王廟) 동묘의 건축은 남묘·북묘 등 서울에 건립된 관왕묘 가운데 가장 웅장하고 거대한 대표적인 건물로서 건축양식은 다포계의 통성을 준수한 평범한 가구의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천장은 연등천장이며 처마는 겹처마로 되어 있다. 마루는 양성을 하고 취두와 용두를 각각 배치했다. 대문은 남면 중앙에 내었는데 정면 5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기와지붕으로 지면보다 별로 높지 않은 축단 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가운데 3칸은 판문을 달아 출입할 수 있게 하고 좌우 1칸은 사고석으로 벽을 쳤으며 마루를 깔고 살문을 단 방을 만들었다. 동묘의 건축양식은 우리나라 건물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특수..

관광인 여행 .....590.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릉(宣陵)

관광인 여행 ........................590.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릉(宣陵) 서울삼성 : 선릉(宣陵) 선릉은 제9대 성종(1457~1494)과 계비 정현왕후(1462~1530) 윤 씨의 능으로 동원이강릉이다. 각기 다른 능침을 갖고 있지만 홍살문, 정자각은 하나다. 앞에서 보면 좌측이 성종의 능, 우측이 정현왕후의 능이다. 성종의 봉분에는 십이지 신상이 새겨진 병풍석과 난간석이 있다. 특이한 점은 세조의 "석실이 유해무익하니 원·능은 석실과 병풍석을 세우지 마라"라는 유지에 따라 석실은 만들지 않았지만 병풍석을 세웠다는 점이다. 병풍석의 면석에는 연꽃무늬, 인석에는 해바라기와 모란 무늬가 조각되어 있으며 12면에 십이지 신상을 조각해 방위를 표시했다. 원래 십이지 신상은 동물이 뚜렷하..

관광인 여행 ........ 572. 경기도 김포시 중봉 조헌과 우저서원

관광인 여행 ................... 572. 경기도 김포시 중봉 조헌과 우저서원(重峯趙憲牛渚書院) 김포 : 중봉 조헌과 우저서원(重峯趙憲牛渚書院) 조헌(1544년 ~ 1592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유학자이자 경세사상가, 의병장이다. 조선국 공조좌랑 등을 지냈다. 임진왜란 당시 금산에서 700명의 의병을 이끌고 끝까지 분전했으나 중과부적으로 모두 전사했다. 정치적으로는 기호학파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평생을 직언으로 일관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5월에 격문을 띄우고 의병을 모아 차령에서 왜군을 물리쳤다. 그후 다시 의병을 모아, 8월 1일 영규의 승군과 같이 청주성을 수복했다. 왜적이 충청도와 전라도를 빼앗으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금산으로 향했으나, 충청도순찰사 윤국형과의 의견대립과..

관광인 여행 ...... 546. 경기도 광명시의 이원익 선생과 관감당.

관광인 여행 ............. 546. 경기도 광명시의 이원익 선생과 관감당(李元翼先生 觀感堂) 광명소하 : 이원익선생과 관감당(李元翼先生 觀感堂) 이원익은 1569년(선조 2) 별시문과에 합격하여 관직에 오른 후 1573년 성절사(聖節使)의 질정관(質正官)으로 중국에 다녀왔으며, 1575년 이후 정언(正言)·헌납(獻納)·사간(司諫) 등을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 때는 평안도 도순찰사로서 왕의 피난길을 선도하고 군사를 모아 적군과 싸웠으며, 1593년 평양탈환 때 공을 세우고 변무사(辨誣使)로 명에 다녀오는 등 큰 활약을 하여 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책훈되고 완평부원군(完平府院君)에 봉해졌다.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고 청백리에 피선되었으며 궤장(几杖)이 하사되었다. 이원익 선생묘는..

관광인 여행 ..... 473. 서울시 은평구의 북한산성과 파발

관광인 여행 ..... 473. 서울특별시 은평구의 북한산성과 파발(北漢山城 擺撥) 서울은평 : 북한산성과 파발(北漢山城 擺撥) 북한산성은 백제가 위례성에 도읍을 정한 뒤 도성을 지키기 위해 쌓은 포곡식 석축산성으로 132년에 축조했다. 삼국이 모두 군사요지로 여겨 치열한 쟁탈지가 되었는데, 475년 고구려의 장수왕이 이 성을 함락하고 개로왕을 전사시킴으로써 백제는 웅진성으로 도읍을 옮겼다. 그뒤 553년 신라가 북한산성을 차지하고 이곳에 진흥왕순수비를 세웠다. 603년 고구려군이, 661년 고구려 장군 뇌음신이 말갈군과 함께 포위 공격을 했으나 격퇴당했다. 고려시대 현종이 성을 증축했으며, 1232년 이곳에서 몽골군과 격전을 벌였다. 조선시대에는 1711년 대규모의 축성 공사를 실시해서 석성을 완성시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