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 광 인 여 행......................1.111,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귀래정.
귀래정(歸來亭)
기울어가는 나라를 근심하여 조정에 글을 올려 진언하였으나, 실효가 없어 한계를 통감한 그가 용인 · 곤양 등지로 다니면서 많은 치적을 남기고 백성들의 유임운동도 뿌리치고 귀거래사를 부르면서 낙향한 심정을 담은 곳이다.
순창 : 귀래정(歸來亭)
귀래정은 조선 전기의 문신인 신숙주가 1470년경에 지은 정자 이다. 귀래정이라는 이름은 " 벼슬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이름은 당시 가볍게 교유하였던 서거정이 지어 준 것인데 신말주는 귀래정을 자신의 호로 삼았다. 신말주는 세종과 세조 때의 대표적인 명산인 신숙주의 막냇 동생이다. 그는 단종 2년과거에 급제 하였고, 세조가 왕위에 오르는데 크게 기여하여공신이 된 후 연산군 4년 70세의 나이로 은퇴할 때까지 여러 관직을 역임 하였다. 정부인 심씨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성종 원년부터 성종 7년까지 약 7년간 부인의 고향인 순창에 머물렀고 은퇴한 후에도 순창으로 낙향하여 여생을 보냈다. 현재의 건물은 1974년에 고쳐 지은 것으로 정자의 중앙에는 방을 두었고, 사방에 마루를 둘렀다. 내부에는 서거정이 " 귀래 " 라는 이름을 지은 연유를 기록한 " 귀래정기 " 와 당대의 문장가였던 강희명이 쓴 시문 등이 걸려있다. (귀래정 안내문)
귀래정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67호.)1456년에신말주(1429 - 1503) 선생이 자신의 호를 따서지은 정자이다. 선생은 신숙주(1417 - 1475)의 아우로서,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처가인 순창으로 정부인 설씨(1429 - 1508)와 낙향하여 귀래정을 짓고 자연을 벗 삼으며 여생을 보냈다. 아울러 설씨부인은 이곳에서 권선문을지어 여류 문인으로서 돋보이는 서화 싷력을 보여주었으며, 신말주의 학문적 벗인 서거정이 지은 구레정기와 강희맹과 김인후등 많은 선비들이 지은 시 등을 적은 현판이 지금도 남아 있다.
순창 : 귀래정(歸來亭)
신말주는 수양대군(세조)이 조카 단종을 내몰고 왕위에 오르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지켜 벼슬에서 물러나 순창으로 낙향하였다. 귀래정은 조선 세조 2년(1456년)에 신말주(1429~1505)가 지은 것으로 그의 호를 따 귀래정이라 하였다. 신말주는 신숙주의 동생으로,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이에 불만을 품고 벼슬을 버리고 순창으로 낙향하여 이 정자를 세우게 된 것이다. 그 후 다시 중앙 정계로 진출할 때까지 신말주는 이 정자에서 시를 짓고 자연을 벗삼으며 지냈다고 한다. 정자에는 서거정이 지은 귀래정기와 강희맹의 시를 적은 액자가 남아 있다, 안쪽에는 서거정이 지은 귀래정기와 강희맹의 시문을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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