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 광 인 여 행......................1.028,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 헌릉.
헌릉(獻陵)
헌릉은 조선 왕조를 화려하게 수놓은 풍운아 제3대 태종(1367~ 1422)과 원비 원경왕후(1365~1420) 민 씨의 능이다. 태종 이방원은 고려 공민왕 16년 함흥 귀주동에서 태조 이성계와 신의왕후 한 씨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방원은 16세에 문과에 급제할 정도로 머리가 명석했다. 태종 등극의 1등 공신으로 관상을 잘 봤던 하륜은 방원을 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 사람은 하늘을 덮을 만한 영특한 기상이 있다"라고 칭찬했다.
서울서초 : 헌릉(獻陵)
헌릉은 조선 3대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능이다. 헌릉은 하나의 곡장 안에 봉분을 나란히 배치한 쌍릉(雙陵)의 형식으로, 앞에서 능을 바라보았을 때 왼쪽(서쪽)이 태종, 오른쪽(동쪽)이 원경왕후의 능이다. 1420년(세종 2) 원경왕후가 먼저 세상을 떠나 현재의 자리에 능을 조성하였다. 원경왕후의 능을 조성할 때 태종은 자신의 능자리를 미리 만들었다. 2년 후 1422년(세종 4) 태종이 세상을 떠나자 원경왕후의 능 서쪽에 능을 조성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능침 봉분은 모두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렀고, 병풍석에는 십이지신상과 영저(금강저) 및 영탁(금강령) 등을 새겼다. 봉분 주변으로는 문석인, 무석인, 석마, 정중석, 장명등, 석상(혼유석), 망주석, 석양과 석호를 배치하였다. 특히 문석인, 무석인, 석마, 석양, 석호 등은 다른 왕릉에 비해 두 배 더 배치되었는데, 이는 고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현·정릉(玄·正陵) 제도를 따른 것이다. 능침 아래의 신도비각에는 두 개의 신도비가 있는데, 태종이 세상을 떠난 후 세운 신도비와 1695년(숙종 21)에 원래 신도비가 훼손되어 다시 세운 신도비가 있다.
서울서초 : 헌릉(獻陵)
태종 헌릉 신도비(太宗 獻陵 神道碑) : 신도비는 왕과 왕비 등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비신(碑身, 몸통)과 귀부(龜趺, 거북이 받침), 이수(螭首, 용을 새긴 머릿돌)를 갖추고 있다. 헌릉 신도비는 1422년(세종 4) 태종이 세상을 떠나고 헌릉을 조성한 2년 뒤(1424년)에 세운 것으로 앞면의 비문은 변계량이 짓고, 성개의 글씨로 썼으며, 전액(篆額, 전서체로 쓴 머리글)은 권홍의 글씨이다. 뒷면의 비문은 윤회가 지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글자가 마모되고 비석이 훼손되자 1695년(숙종 21) 신도비를 다시 제작하여 원래 신도비 오른쪽에 세웠다. 헌릉 신도비는 태조 건원릉 신도비와 같이 조선 초기에 제작된 신도비로, 역사 연구 활용의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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