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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인 여행...906. 경북 영주시 부석면 복지리, 부석사 무량수전.

공룡우표매니아 2024. 2. 12. 03:00

관 광 인  여 행.................................. 906.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복지리, 부석사 무량수전.

부석사 무량수전(浮石寺 無量壽殿)

   부석사 무량수전은 1376년에 진각국사(眞覺國師) 천희(千熙)가 중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런 전통 건물은 보통 짓고 나서 100~150년 후에 수리하기 때문에 건립시기는 이보다 약 100년 정도 이를 것으로 본다. 안동의 봉정사 극락전은 1363년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어 일반적으로는 봉정사 극락전이 조금 더 오래되었다고 여겨지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추정만 하는 것이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1962년 국보 제18호로 지정되었다. (나무위키)

영주부석 : 부석사 무량수전(浮石寺 無量壽殿)

   무량수전은 조선시대 건물과 비슷해 보이면서도 자세히 보면 다른 점이 눈에 띄는데 우선 창호의 배치가 다르다. 원래 고대 건축인 삼국시대 건물에는 창호가 없었다. 당시에는 종이(한지)는 매우 소량 생산되되어 비싼 귀중품이었기 때문에 창에다 종이를 붙이기는 매우 사치스러웠다. 그래서 천이나 대나무 발 등으로 막아 놓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야 창호란 단어와 함께 종이를 창문에 붙이기 시작했다. 따라서 무량수전의 창호는 그 당시로서는 꽤 최신 유행을 따른 고급스러운 장치였을 것이다. 이 때문에 창호의 살 형태도 가장 기초적인 정자살이다.

   무량수전은 원래 입식용 건축이었다는 것이다. 현재 무량수전 실내에 있는 나무 바닥 아래에는 원래 녹색의 유약을 칠한 벽돌인 녹유전(綠釉塼)이 깔린 바닥이 있다. 즉 고려시대에는 중국의 건축물들처럼 실내에서 신발을 신고 지내는 입식생활이 일반적이었고, 무량수전 건축에도 반영됐다는 것이다.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와 온돌 등의 이유로 좌식생활이 일반화되고, 특히 절에서는 엎드려서 절을 하기 때문에 새로 나무 바닥을 깐 것이다.

   일반적인 불전은 건물 중심에 불단을 놓고 불상을 건물의 향(向)과 같게 한다. 그러나 부석사 무량수전은 불단을 건물 서쪽에 치우쳐 배치하고 불상이 동쪽을 향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내부 바닥에는 본래 녹유전(유약을 바른 전돌)을 깔았었다. 이것은 아미타불이 서방(西方) 극락세계에 있고 극락세계는 바닥이 유리로 만들어졌다고 하는 불경의 내용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무량수전과 같은 평면 구성은 건물의 깊이를 확보하고 불단으로 향하는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영주부석 : 부석사 무량수전(浮石寺 無量壽殿)

   부석사 무량수전은 고려시대 목조 건물로서 내부에 무량수불(無量壽佛: 무한한 수명을 지닌 부처)인 아미타불(국보 제45호)을 봉안하고 있다. 정면 가운데 칸에 걸린 편액은 고려 공민왕이 썼다는 기록이 있다. 공민왕이 홍건적의 침입 때 안동으로 피난 왔다가 귀경길에 부석사에 들러 쓴 것이라고 전한다. 한편, 부석사 무량수전 서쪽에는 부석(浮石, 일명 뜬바위)이 있는데 이 바위는 의상대사를 흠모하던 당나라 선묘(善妙)낭자가 변한 것이라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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