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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인 여행...882. 대구 군위군 군위읍, 일연스님과 삼국유사.

공룡우표매니아 2024. 1. 7. 03:00

관 광 인  여 행.................................. 882. 

대구 군위군 군위읍, 일연스님과 삼국유사.

일연스님과 삼국유사

    일연(一然) 고려 충렬왕 때 <삼국유사>를 편찬한 고려의 승려. 이름은 견명, 자는 회연, 호는 무극, 목암으로 최씨 무인정권과 밀접한 유대를 가지고 있던 정안의 초청으로 남해 정림사에 머물면서 남해분사에서의 작업에 참가하게 됐다. 원종 2년 명에 따라 선월사에 머물면서 지눌의 법맥을 계승했다. 중앙정계와 관련을 맺은 후 이를 배경으로 가지산문의 재건에 힘썼다. 충렬왕 3년 명에 따라 운문사에 머무르면서 <<삼국유사>>의 집필에 착수했다. 특정 신앙이나 종파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불교신앙을 표방하는 저술을 찬술했으며, 선과 교를 막론하고 많은 불교 서적을 편수했다. (다음백과)

군위 : 일연스님과 삼국유사

    1259년 대선사(大禪師)가 되었고, 1261년(원종 2) 원종의 명에 따라 강화도에 초청되어 선월사(禪月社)에 머물렀는데, 이때 지눌(知訥)의 법맥을 계승했다. 이는 그가 가지산문에서 사굴산문으로 법맥을 바꾼 것이 아니라 원종을 옹위한 정치세력이 불교계를 통솔하기 위해 일연을 이전의 수선사 계통의 승려를 대신한 계승자로 부각하기 위한 것이었다. 일연은 중앙정계와 관련을 맺은 이후, 이를 배경으로 가지산문의 재건에 힘썼다. 1268년 왕명에 의해 운해사(雲海社)에서 대장낙성회(大藏落成會)를 주관하고, 1274년 비슬산 인홍사(仁弘社)를 중수한 후 왕의 사액에 따라 인흥사(仁興社)로 개명했으며, 같은 해 비슬산 용천사(湧泉寺)를 불일사(佛日社)로 개명했다.

    1277년(충렬왕 3)부터 충렬왕의 명에 따라 운문사(雲門寺)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이곳에서 〈삼국유사 三國遺事〉의 집필에 착수했다. 1281년 충렬왕이 동정군(東征軍)을 격려하기 위하여 경주에 왔을 때 부름을 받고, 이 인연으로 다음해에 개경 광명사(廣明寺)에 머물게 되었다. 1283년 3월 국존(國尊)으로 책봉되고, 원경충조(圓經沖照)라는 호를 받았으나 노모의 봉양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1284년 인각사(麟角寺)에서 2회에 걸쳐 구산문도회(九山門徒會)를 열었는데, 이는 가지산문이 일연을 중심으로 고려 불교계의 전 교권을 장악한 것을 뜻한다. 1289년 7월 왕에게 올리는 글을 남기고 입적했다.

군위 : 일연스님과 삼국유사

    일연은 12세기 이후 고려 선종계에 유행한 임제선(臨濟禪)의 영향에 의해 간화선(看話禪)에 심취했으나, 남해 정림사에 초청을 받아 머물게 되면서 이미 기존의 임제종 계통의 간화선을 적극 수용하여 정리한 단계에 있던 수선사의 선풍(禪風)에 의해 더욱 세련된 간화선에 심취했다. 하지만 특정 신앙이나 종파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불교신앙을 표방하는 저술을 찬술했으며, 선·교(禪敎)를 막론하고 많은 불교 서적을 편수했다. 그의 저술의 특징은 선종 계통이 주를 이루며, 사전(事典)의 성격을 지닌 저작이 많다는 것이다. 또 〈중편조동오위 重編曹洞五位〉에는 초기 성리학적 분위기와 서로 맥락이 닿는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한편 〈삼국유사〉 찬술을 위해 1278년에 이미 〈역대연표〉를 작성하고, 이후 그의 나이 73~76세에 운문사에서 〈삼국유사〉를 찬술했다. (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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