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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인 여행...757. 서울특별시 종로구 훈정동, 종묘 제례악

공룡우표매니아 2023. 5. 3. 03:00

관광인 여행............................... 757. 

서울특별시 종로구 훈정동, 종묘 제례악(宗廟祭禮樂)

 

광화문 : 종묘 제례악(宗廟祭禮樂)

    조선시대 종묘에 제사드릴 때 연주하는 기악과 노래와 무용의 총칭. ‘종묘악’이라고도 하며 1964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종묘라 하면 정전(正殿)을 지칭하는 것이나 사실은 그 서편에 조묘(祧廟)인 영녕전(永寧殿)이 있어 두 사당으로 이루어졌다. 종묘는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도 있었으나 음악을 제향에 사용하기는 고려 초기 숙종 무렵이다. 이 때의 음악이 어떠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 뒤 송나라에서 대성아악(大晟雅樂)이 들어와 1116년(예종 11) 10월부터 아악이 사용되었으나 체계가 갖추어진 것이 못 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고려시대의 것을 답습하다가 1395년(태조 4) 11월 고려의 옛 제도를 바꾼다는 원칙 아래 종묘악장(宗廟樂章)을 고쳤으나 그 음악에 관하여는 자세히 알 수 없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종묘는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의 역대 왕과 왕비 그리고 황제와 황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국가 최고의 사당이다. 종묘는 제사를 모시는 정전, 영녕전 등의 공간과 제사를 준비하는 전사청 등의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다. 종묘는 건축의 보편적 가치와 세계적으로 독특한 건축양식을 지닌 의례공간이라는 건축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 또한 우리 문화의 독창성과 우수성이 인정되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었다. 조선역대 왕과 왕비의 혼과 넋이 깃든 종묘에서 왕이 친히 거행하였던 가장 크고 중요한 제례를 종묘대제라고 한다. (시니어 타임스 Senior Times)(http://www.seniortimes.kr)

광화문 : 종묘 제례악(宗廟祭禮樂)

    종묘제례(宗廟祭禮) : 1975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2001년에는 유네스코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 2008년에는 세계무형유산 대표목록으로 통합되었다. 종묘제례는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식으로 수많은 제사 가운데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종묘대제(宗廟大祭)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정기적으로 사계절과 납일(臘日)에 올리는 5대향, 수시로 올리는 천신제(薦新祭), 영녕전과 사직에서 봄, 가을 및 납일에 올리는 3대향이 있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중단되었다가 1969년부터 종묘제례보존회(전주이씨 대동종약원)가 행사를 주관한다. 현재 예식은 대한제국의 제도를 따라 천자국(황제국)의 양식으로 시행하고 있으며, 크게 제향을 봉행하기 위해 임금이 종묘에 이르러 재계하는 절차인 어가행렬과 제례봉행(제례악, 일무 포함)으로 나뉜다. (나무위키)

광화문 : 종묘 제례악(宗廟祭禮樂)

    역사와 구성 : 종묘제례악 등 아악으로 분류되는 제례음악은 북송의 휘종이 창제한 《대성아악》(大晟雅樂)(1105년)에서 기원했다. 이것이 한반도에 전해진 것은 고려 예종 11년(1116년)으로 편종과 편경 스물두 틀ㆍ일현금ㆍ삼현금ㆍ오현금ㆍ칠현금ㆍ구현금ㆍ슬ㆍ지ㆍ적ㆍ소ㆍ소생ㆍ화생ㆍ우생ㆍ훈ㆍ박부ㆍ진고ㆍ입고ㆍ축ㆍ어 등 아악기 20종을 북송으로부터 받았다. 그러나 불교를 우선하던 고려에선 유교식 제사음악인 《대성아악》이 크게 발전하진 않았고, 여몽전쟁을 거치며 서서히 쇠락하다가 조선에 접어들어 세종과 세조 두 임금이 대대적으로 재정비했다. 현행 종묘제례악은 세종대왕 치세 때 창작되거나 중국의 제례악에서 편곡 혹은 개작된 곡들이 주를 이루는데, 크게 《보태평》(保太平) 그리고 《정대업》(定大業)이라는 두 묶음으로 구성된다. 세종은 《보태평》과 《정대업》을 제사용이 아닌 회례용으로 만들었다. 음악 두 묶음을 정리하고, 일부 수정/축소해서 제례악으로 바꾼 때는 세조 10년(1464년)이었다.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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