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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인 여행 .....689. 서울특별시 마포구, 절두산순교성지

공룡우표매니아 2022. 12. 4. 03:00

관광인 여행 ................... 689. 

서울특별시 마포구, 절두산(切頭山)순교성지

 

서울마포 : 절두산(切頭山)순교성지 

   절두산은 원래 머리를 높이 든 형상이라 하여, 가을두, 누에의 머리와 비슷하다고 하여 잠두봉이라 부르던 곳이다. 바로 아래 양화진나루터에는 한강을 통해서 각 지방에서 조세곡 수송선과 어물, 채소 등을 실은 배가 드나들었다. 양화진주변은 잠두봉과 어울려 이름난 명승으로 많은 풍류객과 문인들이 뱃놀이를 즐기면서 시를 지었던 곳이기도 하다. 1866년 2월 프랑스군함이 천주교탄압을 문제삼아 한강을 거슬러 양화진과 서강까지 진입하였다. 이에 격분한 대원군은 수많은 천주교인들을 잠두봉에서 목을 베어 참수케 한다. 그 뒤로 머리를 잘랐다하여 절두산(切頭山)이라는 지명을 얻게 되었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병인(1866년) 순교100주년을 기념하여 1967년 10월 순교 기념관을 개관하였다.현재 절두산성지 내에는 한국 천주교회 관련 사료와 유물·유품전시관, 28위의 성인유해를 모신 유해실, 순례성당, 순교자 교육관을 비롯하여, 야외 전시관이 있다. 절두산 순교 성지는 생명을 바쳐 믿음을 증거한 한국 천주교회 신앙 선조들의 순교정신이 살아 쉼쉬는 뜻깊은 성지이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절두산 순교성지는 한강변의 산 중턱에 자리해 강변의 풍경과 일몰이 장관이다. 방주를 타고 홍수의 시련을 견딘 노아에게 신은 무지개를 선물했던가. 절두산은 순교자의 희생으로 본래의 절경도 회복했다. 기념관 초입에서 당산철교 아래 방향으로는 순교자 기념탑도 있다. 지난 2000년 9월에 세워졌다. 기록에 전하는 28인을 비롯해 수많은 순교자들을 기념한다. 기념탑은 세 개의 탑으로 이루어졌다. 가운데에는 형틀을 상징하는 조형물 아래 순교자들의 전신을 부조했다. 오른쪽의 잘린 머리를 형상화한 기념물이 인상 깊다. 왼쪽에는 순교자들의 전신을 부조한 기념탑이다. 순교자들의 머리맡에는 ‘무명인’이라고 적혔다. 이름 없는 순교다. 그것은 잠두봉이 절두산이 된 것처럼, 누에가 나비가 되는 것처럼 변태의 과정이요, 인고의 세월이다. (오!!! 멋진 서울)

서울마포 : 절두산(切頭山)순교성지

   절두산은 원래 누에의 머리를 닮았다 해 잠두봉(蠶頭峰)이라 불렸다. 용두봉(龍頭峰), 가을두(加乙頭)라고도 했다. 한강을 향한 봉이라 지명에 ‘머리’(頭)가 빠지지 않는다. 그만큼 풍광이 좋았다. 『동국여지승람』에서 강희맹은 ‘언덕의 발부리가 호수 가운데 뾰족하게 바늘처럼 나왔고 형세도 높아서 호수 가운데 승경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예부터 많은 시인들이 노래했다. 절경을 자랑하던 잠두봉이, 용두봉이, 가을두가 절두산(切頭山)이란 끔찍한 이름 하나로 불리기 시작한 건 1866년이다. 병인양요와 병인박해다. 1866년 초 대원군은 천주교를 금하는 법령(금압령)을 내렸다. 그로 인해 조선인 천주교 신자 수천 명과 프랑스 선교사 아홉 명이 새남터에서 처형됐다. 이를 빌미로 프랑스 함대는 조선을 침공했다. 그들은 양화진을 거쳐 서강까지 정탐한 후 강화도를 공격했다. 병인양요였다. 격노한 대원군은 천주교인들의 피로 오욕을 씻겠다며, 양화진 잠두봉에 새 처형장을 만들었다. 병인박해의 시작이었다. ‘머리를 자른다’는 뜻의 절두(切頭)라는 이름이 생겨난 것도 이때부터다. 다시 머리라는 뜻을 담았지만 그 의미는 예전과 같지 않다. (오!!! 멋진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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