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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인 여행 .....691. 서울특별시 은평구, 북한산성과 파발.

공룡우표매니아 2022. 12. 8. 03:00

관광인 여행 ..................... 691. 

서울특별시 은평구, 북한산성과 파발(北漢山城 擺撥).

 

서울은평 : 북한산성과 파발(北漢山城 擺撥)

   북한산성은 백제가 위례성에 도읍을 정한 뒤 도성을 지키기 위해 쌓은 포곡식 석축산성으로 132년에 축조했다. 삼국이 모두 군사요지로 여겨 치열한 쟁탈지가 되었는데, 475년 고구려의 장수왕이 이 성을 함락하고 개로왕을 전사시킴으로써 백제는 웅진성으로 도읍을 옮겼다. 그뒤 553년 신라가 북한산성을 차지하고 이곳에 진흥왕순수비를 세웠다. 603년 고구려군이, 661년 고구려 장군 뇌음신이 말갈군과 함께 포위 공격을 했으나 격퇴당했다. 고려시대 현종이 성을 증축했으며, 1232년 이곳에서 몽골군과 격전을 벌였다. 조선시대에는 1711년 대규모의 축성 공사를 실시해서 석성을 완성시켰다. 현재 삼국시대 토성은 약간 남아 있을 뿐이고, 대부분 조선 숙종 때 쌓은 것이 남아 있다. 사적 제162호로 지정되었다. (다음백과) 

   조선시대 변서(邊書 : 변방으로 가는 공문서)를 신속히 전달하기 위해 설치한 교통통신 수단이 발전(撥傳 : 파발로 전하는 것)이 지체된 이유는 발마의 남기(濫騎)와 그로 인한 피폐, 심지어는 사문서의 전달까지도 파발을 이용해, 발군이 고역에 시달리고 급기야 도망치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한편, 국가의 기밀이 엄수되어야 할 공문서를 훔쳐보는 사례가 있어 기밀이 누설되는 폐단도 많았다. 이러한 파발제는 역(驛)과 봉수제와 함께 조선시대 군사 통신체제의 골격을 이뤘다. 그러나 조선 말기의 전화전신 통신체제의 발달로 그 제도적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울은평 : 북한산성과 파발(北漢山城 擺撥)

   파발(擺撥) 조선시대에 공문서를 전달하던 통신수단으로, 조선은 본래 군사 통신제도로서 봉수제를 갖추고 있었으나, 임진왜란을 치르면서 파발제의 필요성을 느끼고 1597년(선조 30)에 이를 설치하게 되었다. 파발에는 말을 타고 연락하는 기발과 사람이 속보로 걸어서 연락하는 보발이 있었다. 이중 기발은 25리마다 참을 설치하고 매참에 발장 1명, 색리 1명, 파발군 5명, 말 5필을 두었다. 보발은 30리마다 참을 두고 발장 1명과 파발군 2명을 배치했다. 파발은 서울에서 의주에 이르는 서발, 서울에서 경흥까지의 북발, 서울에서 동래에 이르는 남발 등 3대로를 중심으로 정비되었다. 참의 설치 수는 〈만기요람〉에 따르면 서발에는 직로에 38참(경기 7참, 황해도 13참, 평안도 18참)을 두고 사잇길에 48참(평산에서 해주까지 5참, 박천에서 압록강변 여러 고을까지 43참)을 두었다. 북발에는 직로에 64참(경기도 3참, 강원도 6참, 함경도 55참), 사잇길에 10참(북청에서 삼수까지 10참)을 두었다. 남발은 직로에 34참(경기 9참, 충청도 5참, 경상도 20참)을 두었다. 서발·북발·남발 중 서발의 직로만이 기발이고 나머지는 모두 보발이었다. 파발은 일의 완급을 나타내는 방울을 달아 전송했는데, 방울 셋을 단 3현령은 긴급사태를 의미했다. 보통은 하나를 달고, 이보다 급한 일은 2개를 달았다. (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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