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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인 여행 .....687. 인천광역시 강화군, 보문사석문

공룡우표매니아 2022. 11. 27. 03:00

관광인 여행 ...................... 687. 

인천광역시 강화군, 보문사석문

 

삼선 : 보문사석문

    인천 강화군 삼산면 매음리 낙가산에 있는 신라시대의 절. 대한불교조계종 직영사찰로 우리 나라 3대 관음영지 중 한 곳이며, 창건 당시 서역의 고승이 천인대에 불상을 모시고 날아왔다는 설이 있다. 635년(선덕여왕 4) 4월, 삼산면에 살던 한 어부가 바다 속에 그물을 던졌더니 인형 비슷한 돌덩이 22개가 함께 올라왔다. 실망한 어부는 돌덩이들을 즉시 바다로 던져 버리고 다시 그물을 쳤지만 역시 건져 올린 것은 돌덩이였으므로 다시 바다에 던졌다. 그날 밤, 어부의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서 귀중한 것을 바다에 두 번씩이나 던졌다고 책망하면서, 내일 다시 돌덩이를 건지거든 명산에 잘 봉안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다음날 22개의 돌덩이를 건져 올린 어부는 노승이 일러준 대로 낙가산으로 이들을 옮겼는데, 현재의 석굴 부근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돌이 무거워져서 더 이상은 나아갈 수 없었으므로 “바로 이곳이 영장(靈場)이구나.” 하고는 굴 안에 단(壇)을 모아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보문사(普門寺) :  천연동굴을 이용하여 입구에 무지개 모양을 한 3개의 문을 만들고, 그 안에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마련하여 석가모니불을 비롯한 미륵, 제화갈라보살, 나한상 등을 모셔두었다. 석굴의 면적은 320m2, 높이 8m로 석실로서는 꽤 큰 편이다. 내부에는 반월형 대좌를 마련하고 탱주를 설치한 후 그 사이에 21개소의 감실(龕室)을 두어 석불을 안치하였다. 이 석불들에는 신라 선덕여왕 때 한 어부가 고기를 잡다가 그물에 걸린 돌덩이를 꿈에 나타난 대로 모셔 두었더니 큰 부자가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데, 불상의 제작연대는 그처럼 오래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석실은 지금도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로 추앙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7호. (네이트 지식 외)

삼선 : 보문사석문

    보문사 석실 안에 봉안된 세분의 삼존상과 한분의 관세음보살상, 19분의 나한상은 눈썹바위의 마애관음보살좌상과 더불어 보문사의 대표적 성보문화재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보문사가 관음성지인 동시에 나한신앙의 대표적 도량이 된 것은 바로 이 석실에 있는 나한상 때문으로 보아도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석실 및 석실에 봉안된 나한상이 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만큼 높다 할 것입니다. 또한 이 석실은 우리나라에 흔치 않은 석굴사원이기도 합니다. 이 석실의 역사는 보문사 창건 역사와 거의 일치합니다. 일화에 따르면 창건 후 14년 뒤인 649년 신라 선덕왕 때 어부들이 고기잡이 나가다 그물에 걸려 올라온 석불상들을 이곳 동굴에 안치하였다고 하였으므로, 곧 그때부터 석실이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 뒤의 역사는 자세한 기록은 없고 다만 조선 후기인 1812년(순조 12)에 한차례. 그리고 1867년(고종 4)에 다시 경산(京山) 화상이 석굴을 보수했습니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1958년 춘성(春城)선사가 석굴 내부를 좀 더 확장하며 개수하였고, 최근에는 1980년 정수(靜守)스님이 내부를 다시 확장하는 한편 지금의 불단(佛壇) 뒤와 옆에 있는 석탱화를 조성하였다고 합니다. 석실의 구조를 보면 내부는 천연 동굴을 확장하여 만들었고 입구에 무지개 모양을 한 3개의 아치형 홍예문(虹霓門)을 조성하였습 니다. 석굴 안은 30평 정도로 넓은 편입니다. 상단에 석가모니부처님과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님, 송자관음보살님 그리고 이후에 따로 조성한 관세음보살님이 계시고, 18나한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보문사 [普門寺]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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