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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성(Walled Town Sceneries) 기념우표 초일커버

공룡우표매니아 2021. 8. 9. 03:00

읍성(Walled Town Sceneries) 기념우표 초일커버(FDC)

 

우표발행일 : 2021. 8.  4.    우표번호 : 3528. ~ 3530.    인쇄/색수/특수처리 : 평판/4도/적박 

종수 : 3종    디자인 : 고창읍성    순천 낙안읍성    서산 해미읍성    디자이너 : 김미화

용지 : 평판 원지    인쇄처 : 한국우편사업진흥원(Cartor for POSA)

 

  궁궐, 서원, 누각 등 조선 시대의 다양한 건축물은 오늘날 후손들에게도 공간이 전하는 아름다움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그중에서도 ‘읍성’은 지방 고을의 주민과 행정기관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시설로서, 성벽과 읍성 내의 건축물에는 우리 조상들의 오랜 삶과 문화가 깃들어 있습니다. 우정사업본부는 현재 보존과 복원이 가장 잘 되어 있는 우리나라 3대 읍성을 소재로 기념 우표를 발행합니다.

고창읍성(高敞邑城)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있는 고창읍성은 고창의 옛 이름인 ‘모량부리’에서 유래하여 ‘모양성’이라고도 불립니다. 윤달에 부녀자들이 머리에 돌을 이고 성벽 위를 도는 답성놀이로 유명하며, 사적 제14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석축 기법과 돌에 남아있는 각자 등으로 볼 때 임진왜란 이전인 16세기 말 계유년에 전라도 각지에서 인력을 동원하여 성을 쌓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산기슭의 경사지에 높이 4~6m의 성벽을 1,684m의 길이로 쌓았으며, 동·서·북의 3문과 옹성, 수구문 2곳 등 방어 시설을 잘 갖추고 있습니다.

고창읍성(高敞邑城)

순천 낙안읍성(順天 樂安邑城)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있는 순천 낙안읍성은 평지성으로 조선 초기부터 쌓기 시작하여 이후 여러 차례의 수리를 거쳐 인조 4년(1626) 임경업 장군이 낙안군수로 재임하는 동안 쌓아 완성하였습니다. 사적 제302호로 지정된 낙안읍성의 성벽은 둘레 1,406m, 높이 3~5m이며, 둥근 성벽의 내부는 T자형의 도로로 구획된 계획도시입니다. 동문과 서문을 잇는 간선도로 북쪽 구역은 객사와 관아 등이 있는 공공 영역이고, 그 아래편 남쪽 구역은 백성이 생활하는 구역입니다. 성벽을 따라서 3개의 성문과 치성과 옹성, 해자 등이 남아있고, 읍성 안에는 객사와 관아, 옥사와 창고, 연지와 빨래터 등이 잘 남아있어 조선 시대 읍성의 전모를 보여줍니다.

순천 낙안읍성(順天 樂安邑城)

서산 해미읍성(瑞山 海美邑城)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있는 서산 해미읍성은 태종 18년(1418)부터 축조하여 70여 년 후 성종 22년(1491)에 완성한 석성입니다. 사적 제116호로 지정된 해미읍성은 둘레 1,800m, 높이 5m이며, 충청도 병마절도사영이 있었던 병영성으로서 서해안 일대의 방어를 위해 쌓은 군사용 읍성입니다. 조선 말 1천여 명의 천주교도들이 처형된 천주교 성지로도 유명한 이곳에서 지난 2014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사를 집전하여 세계인의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최근 복원 사업을 통해 성안에서 관아 터 등을 발굴하여 사적공원으로 조성하였습니다.

서산 해미읍성(瑞山 海美邑城)

고창읍성(高敞邑城)

  창은 우리나라에서 군 단위로는 최대의 고인돌 밀집지역이다. 고창읍성(모양성)과 선운사, 그리고 동리 신재효와 미당 서정주의 고장인 고창은 삼한시대인 마한의 54개 소국 가운데 "모로비리국"의 시초로 열리기 시작, 백제 때에는 "모량부리현" 또는 "모양현"으로 불렸고 고려시대 이래 "고창현"으로 불렸다. 고창은 방장산을 긴 노령산맥을 등허리에 안고, 서해에 연해지면서 자리한 고을터이다. 특히 고창은 전북의 삼신산 중 하나인 방장산 여맥이 이어져 일으켜 세운 곳이다. 

고창읍성(高敞邑城)

순천 낙안읍성(順天 樂安邑城)

  낙안고을의 진산인 금전산을 배경으로 완전히 평야에 쌓은 평지 읍성이다. 일반적으로 다른 읍성들이 평지와 산을 이어 쌓은 평산성이라는 점과 다른 점이다. 1397년(태조 6)에 낙안 출신의 절제사 김빈길이 흙으로 쌓았다. 이후 1424년(세종 6)에 토성을 석축성으로 고치면서 지금의 규모와 같이 크고 넓게 쌓아졌다. 정유재란 당시에는 순천 왜성에 주둔하고 있던 왜적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폐허가 된 읍성은 1628년(인조 6) 무렵에 낙안군수로 있던 임경업에 의해 복구되었다. 

순천 낙안읍설(順天 樂安邑城)

해미읍성(瑞山 海美邑城)

  서산 해미읍성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있는 옛 읍성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116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건축된 성 중에서는 보존 상태가 상당히 양호한 성으로, 서산시에서는 해미읍성을 이용한 축제와 관광 상품을 개발하고 있으며, 매년 10월에 해미읍성 역사체험축제(서산해미읍성문화축제)를, 매년 4월부터 10월까지 해미읍성 전통문화공연을 개최하고 있다. 한국의 교회 역사 중에서는 약 3천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천주교 박해로 처형당한 천주교 순교 성지 중의 한 곳이다. 

서상 해미읍성(瑞山 海美邑城)

고창읍성(高敞邑城)

  고창읍성은 조선 단종 원년(1453년)에 왜침을 막기 위하여 전라도민들이 유비무환의 슬기로 축성한 자연석 성곽이다. 일명 모양성이라고도 하는 이 성은 나주진관의 입암산성과 연계되어 호남내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서 국난호국을 위한 국방 관련 문화재로 보존되고 있다. 1965년 4월 1일 사적 제 145호로 지정된 이 성의 둘레는 1,684m 높이가4~6m, 면적은 50,172평으로 동, 서, 북문과 3개소의 옹성 6개의 치성을 비롯하여 성 밖의 해자 등 전략적 요충시설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

고창읍성(高敞邑城)

고창읍성(高敞邑城)

  방장산이 좌우로 펼쳐져 고창군 일대를 광할한 대지로 만든다. 고창은 풍수지리학상, 오행에 적합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 드문 지역으로 동쪽과 남쪽이 높은 반면 서북쪽이 낮게 형성되어 통풍과 햇빛이 골고루 퍼져 농작물 재배는 물론 인간의 두뇌 형성에도 아주 좋은 인맥의 고장이자 예향으로 널리 알려진 고을이기도 하다.고창의 산야는 전라북도의 다른 시군에 비해 낮은 야산으로 형성되어있다. 즉 비산비야 지역이다.

고창읍성(高敞邑城)

해미읍성(瑞山 海美邑城)

  1417년(태종 17년)에 축성을 시작하여 1414년(태종 14) 충청병마절도사영이 덕산(德山)에서 이곳으로 이설되었다. 1421년(세종 3년)에 축성이 완료되었다. 해미읍성은 원래 왜구의 출몰에 대응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건축되었는데, 충청도 병마절도사가 이 성에 주둔한 것도 그 때문이다. 세조때에 군사 제도가 진관체제(鎭管體制)로 개편되면서도 이 역할은 여전하여 충청도 지역의 주요 군사거점으로서 역할을 수행하였다. 1651년(효종 2년)에 병마절도사가 청주로 이전하면서 해미현 관아가 옮겨와 해미읍성이 되고, 문무를 겸한 겸영장이 배치되며 호서좌영으로 명칭이 바뀐 이후, 호서 지방 행정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해미읍성이란 명칭도 이때 개명된 것으로 본래 이름은 '해미내상성'(海美內廂城)이었다.

 

서산 해미읍성(瑞山 海美邑城)

  읍성 기념 우표의 전지에는 조선 시대 지방 지도 중 유명한 ‘전라도무장현도’가 담겨 있어 과거의 읍성 모습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이번 우표를 통해 우리나라 3대 읍성의 아름다움을 확인하고, 보존이 잘 되어 그 가치가 높은 읍성들을 차례로 방문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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