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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이끈 과학기술. 초일커버(FDC)

공룡우표매니아 2020. 1. 6. 04:00

한국을 이끈 과학기술. 초일커버(FDC)


우표발행일 : 2019. 12.  27     우표번호 : 3427 ~ 3434     인쇄/색수 : 평판/4도    디자이너 : 박은경

디자인 : 통일벼. 일관제철기술. 선박설계건조기술. DRAM 메모리 반도체. 한탄바이러스 백신.우리별 인공위성.

한국표준형 원전설계기술. 리듐이온전지.  인쇄처 : 한국우편사업진흥원(Southem Colour Print)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은 국민이 더욱 풍요롭고 편리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혁신과 경제발전을 이끌어오며 국가의 위상을 드높였습니다. 우정사업본부에서는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위대한 여정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 바라며 한국을 이끈 과학기술 기념우표 8종을 발행합니다. 

통일벼

  1960년대에 과학기술전담부처와 과학기술연구기관이 설립되고 정부에서 체계적으로 지원하여 연구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1970년대에는 국가 과학기술의 체계가 본격적으로 갖추어져 식량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농촌 진흥청이 수년간 연구한 끝에 1971년 통일벼 품종을 개발하여 주식의 자급자족을 이루었습니다.

일관제철기술

  철강 분야에서 포항1고로를 완공하여 국내 최초로 일관제철소를 가동함으로써 우리나라가 제조업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선박설계건조기술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에 따라 조선산업이 급성장하기도 하였습니다. 현대중공업은 1974년 11월 그리스 리바노스사에 26만톤급 유조선 아틀란틱 바론호를 성공적으로 인도하였고 이는 한국이 신생 조선강국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DRAM 메모리 반도체

   1980년대에는 국가적으로 연구 활동이 더욱 활발해지고 기술 개발 체제가 확충된 시기입니다. 반도체 후발주자였던 우리나라에서 선진국과 근소한 차이로 4M DRAM 개발에 성공하였고 이후 16M, 64M DRAM을 차례로 개발하여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지키게 되었습니다.

                        한탄바이러스 백신                                         우리별 인공위성

한탄바이러스 백신. 우리별 인공위성

  전 세계를 유행성출혈열의 공포에서 벗어나게도 하였습니다. 수십 년간 밝혀지지 않았던 유행성출혈열의 원인을 1976년에 이호왕 박사가 한탄강 유역의 등줄쥐에서 발견하고, 원인균을 분리하는 데에 성공한 뒤 1990년 세계 최초로 한탄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한 것입니다. 1990년대에는 국내 과학기술의 선진화를 목표로 한 G7 프로젝트 등 첨단기술 개발을 위해 과학기술 전략이 추진되었습니다. 카이스트는 1990년부터 정부 지원으로 독자적인 위성 기술 확보를 위해 연구하였고 1992년 6월, 국내 최초 인공위성 우리별 1호를 발사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이후 우리별 3호 발사까지 성공하여 선진국 대비 기술 수준을 90%대로 올리는 극적인 전환기를 맞이하였습니다.

한국표준형 원전설계기술

  1994년에는 우리 해양과 지질의 특성 및 산업·공업 기준을 적용한 한국표준형 원전을 개발하여 안전하고 안정적인 표준형 원전 운영 기술을 확보하였고, 이는 원자력 발전 기술의 자립과 원전 수출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과학이라는 인간활동이 어느 정도 독자적 분야로 인정되고 또 그 중요성에 눈뜨기 시작한 개화기 이후에서야 부분적이나마 한국과학사에 대해 지식인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1880년대에 집필되어 1895년에 출판된 유길준의〈서유견문 西遊見聞〉에는 조선의 과학기술이 낳은 성과로 고려자기·거북선·금속활자를 들고 있다. 그는 만약 후손들이 이런 전통을 연구·발전시켰더라면 지금 세계의 영광이 조선에 돌려졌을 것이지만, 후손들이 그렇게 하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후 애국계몽의 시대에서 일제강점기까지 한국과학사에 대한 관심은 대체로 2~3갈래에서 진행되었다. 첫째, 서양 선교사 등 서양 아마추어들에 의해 여러 부분의 한국 과학유물이 주목을 받기 시작하는 경우였다. 부츠의 화포, 언더우드의 선박, 루퍼스의 천문학연구 등은 서울의 왕립학회 한국지부를 중심으로 발표되었다. 둘째,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호기심이나 한국의 행정 관여 속에 취미삼아 한국과학사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경우였다. 인천측후소에 근무하던 일본인 기상학자 와다 유지[和田雄治]가 한국 역사에 많이 남아 있는 자연현상에 대한 기록을 주목하고, 첨성대와 측우기에 대해 간단한 논문을 쓴 경우가 이에 속한다.

  셋째, 이 시대 한국인들의 활동을 들 수 있다. 학문적 접근에 미숙했던 한국인 관심자들이 제대로 구성된 논문으로 한국과학사를 다루는 일은 적었지만, 때로는 아주 강력하게 한국의 과학전통에 애착심을 보였고, 또 이를 드러냈다. 최남선이나 그밖의 조선 문화를 자랑하려던 당시의 한국인들은 대개 비슷한 경우였다. 단편적이던 한국과학사에 대한 이런 관심의 표현은 1944년 홍이섭의 〈조선과학사 朝鮮科學史〉로 정리되기에 이른다.원래 일본어로 씌어졌던 이 책은 해방과 함께 1946년 한국어로 번역되어 정음사에서 간행되었다.  (다음백과)

  황폐해진 국토와 자원 빈곤국이라는 한계를 딛고 과학기술의 발전을 토대로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에 오른 대한민국. 이번 기념우표를 통해 일선 현장에서 땀 흘리는 과학기술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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