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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독립운동 유적지 (독립운동가의 발자취) 초일커버

공룡우표매니아 2018. 8. 10. 04:00

해외 독립운동 유적지 (독립운동가의 발자취) 초일커버


발행일 : 2018. 8. 6 우표번호 : 3331 ~ 3334 디자이너 : 박은경  인쇄처 : 한국우편사업진흥원(Cartor)

디자인 : 이준열사 기념관.  안중근의사의거지.  윤봉길의사  황구공원의거지.  대한인국민의회 총회관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위한 활동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곳곳에서 펼쳐졌습니다.  우정사업본부는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독립운동가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를 소개하며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독립 정신을 다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이준(李儁) 열사 기념관(네델란드 헤이그바헌스트리트 124)은 이준 열사가 구국 외교 활동을 펼치며 머물다가 순국한 장소입니다. 1907년 광무 황제(고종)은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 평화 회의에 이상설·이준·이위종을 특사로 파견해 을사늑약 의 불법성을 국제 사회에 알려 대한 제국의 국권을 수호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일제의 방해와 열강의 냉담한 반응으로 본회의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이준 열사 기념관 은 세 분의 한국 특사가 투숙했던 융 호텔을 복원하여 설립한 곳으로, 순절한 이준 열사의 구국 외교 활동에 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하얼빈 안중근 의사 의거지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시 하얼빈역 구내)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던 곳입니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역 앞에서 한국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습니다. 현재 이곳에는 안중근 의사가 권총을 발사한 지점과 이토 히로부미가 쓰러진 자리가 표시돼 있습니다. 기념관 내부에서 하얼빈 역의 플랫폼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그 플랫폼에 ‘安重根击毙伊藤博文事件发生地(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사건 발생지)’라고 적혀 있다.

윤봉길 의사 기념관 (중국 상하이시 훙커우구 사천북로 2288호 루쉰 공원 내)은 윤봉길 의사가 의거를 결행한 상하이 훙커우 공원(현 루쉰 공원)에 세워진 기념관입니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는 중국을 불법적으로 점령하고 승전 기념식을 거행하는 일제 침략자들에게 폭탄을 투척하는 의거를 결행하였습니다. 의거의 현장인 루쉰 공원 내에 마련된 윤봉길 의사 의거 기념비와 정자 형태의 윤봉길 의사 기념관 매헌은 윤봉길 의사의 생애와 활동에 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대한인국민회 총회관 (미국 로스앤젤레스 웨스트 제퍼슨가 1368)은 미주지역 독립운동의 중심 단체로 무형(無形)의 임시정부 로서 역할을 수행하였던 대한인 국민회 총회관 건물입니다.  대한인 국민회는 1910년 하와이의 한인 합성 협회와 북미의 공립 협회가 통합하여 결성된 미주 지역 최고의 중추기관이며, 많은 독립운동 자금을 수합하여 임시 정부의 독립운동을 지원하였습니다. 1936년 총회관 건립을 추진하여 1938년 4월 완공되었습니다.

이준(李儁 1859 ~ 1907) 열사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된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의 특사로 파견되어 을사조약의 무효와 한국의 독립에 대한 열강의 지원을 요청하다가 순국했다. 1894년 함흥의 순릉참봉이 되었으며 이듬해 법관양성소에 입학, 1896년 2월 한성재판소 검사보에 임명되었다. 아관파천이 일어나자 일본에 건너가 와세다대학 법과를 졸업한 후 귀국했다. 1898년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그해 11월 만민공동회에서 가두연설을 하는 등 계몽활동에 앞장섰다.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가 개최된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의 독립에 관한 열강의 지원을 요청할 것을 제의하고 고종의 밀서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열강의 냉담한 반응으로 참석의 길이 막히자 순국했다. (다음 백과)

의사 안중근(安重根 1879 ~ 1910), 1909년 중국 하얼빈에서 초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여 처단한 구한말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순흥, 자는 응칠, 세례명은 토마스로 양반가에서 태어났으며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이후 1906년부터 계몽운동을 벌였다. 1907년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자 강원도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1909년 단지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그해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가 회담을 마친 뒤 환영군중 쪽으로 갈 때 권총 3발을 쏘아 사살했고, '대한만세'를 외친 뒤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사형을 언도받아 1910년 여순 감옥에서 순국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다음 백과)

도산 안창호(島山 . 安昌浩 1878 ~ 1938)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교육자, 정치가이다. 만민공동회와 독립협회에서 활동했으며, 미국 유학 시절 공립협회를 창설하여 미주 교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계몽활동과 민족교육에 몰두했다. 대한인국민회를 이끌며 세계적인 한인네트워크를 결성하여 민족의 단합을 도모했고, 분열된 임시정부의 통합을 위해 진력했으며, 민족개조론을 바탕으로 하는 대독립당운동을 펼쳤다.  (한국사 인물열전)

이준 열사 기념관 (Yi Jun Peace Museum), 평화로운 일상이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네덜란드 헤이그.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이곳은 가슴 아픈 역사가 남아 있는 도시다. 1905년 일본이 강제 체결한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세계에 알리고자 고종 황제가 파견한 특사 세 명의 한(恨)이 깃든 곳이며 특히 이준 열사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안타깝게 순국한 곳이기 때문이다. 나라를 위해 힘썼던 세 열사들의 한과 애국심, 나라를 잃은 설움이 곳곳에 배인 역사적인 장소다. 타국에서 나라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한 열사들을 추모하고 후손들에게 의미 있는 역사의 현장을 널리 알리고자 1995년 8월 5일 개관한 이준열사기념관은 당시 국내외에서 일어난 독립운동의 전개 내용과 다양한 정보, 만국평화회의에서의 열사들의 활약상과 자료들을 알차게 전시하고 있다. (전세계체험여행)

  천안독립 기념관(獨立紀念館)은 외침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켜온 우리 민족의 국난 극복사와 국가 발전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 보존, 전시, 조사, 연구함으로써 민족 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의 투철한 민족정신을 북돋우며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하는 데 이바지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전시 사업으로는 첨단 전시 기법을 도입한 전시 교체 사업, 입체 영상관, 월별 독립 운동가 전시, 자료 기획 전시, 특별 기획 전시, 해외 독립 운동 유적지 복원 사업, 어록 비 관리, 자료실 운영, 도서실 운영, 사진실 운영, 정보화 사업 등을 하고 있다. (디지털천안문화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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