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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원용

공룡우표매니아 엄원용

맥시멈. 영원엽서(그림)

백제역사유적지구 영원 그림엽서, 익산 미륵사지

공룡우표매니아 2017. 1. 30. 04:00

백제역사유적지구 영원 그림엽서, 

익산 미륵사지



   익산 미륵사지(益山彌勒寺址 사적 제150호)

 〈삼국유사〉에 따르면 백제 무왕(600~641)이 사자사로 갈 때 큰 연못에서 미륵삼존불이 나타나자 절을 세웠다 한다. 17세기경에 이미 폐사되었으며 현재는 파손된 서탑과 당간지주 등 일부만 전해지고 있다. 미륵사지는 일제강점기 때 조사가 시작되었으며 1980년대 본격적인 발굴조사의 결과로 동탑과 서탑 사이에 목탑을 세워서 일직선상에 탑 3개를 배열하고, 각 탑의 북쪽편에 금당을 1개씩 둔 가람배치였음을 알게 되었다. 이 절터에서는 1만여 점의 각종 유물이 나왔으며 문자가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었다. 유물들은 미륵사지가 미륵불이 세상에 내려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건립된 것임을 보여준다. (다음백과)

익산 미륵사지 석탐(국보 제11호)

   높이 14.2m. 한국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석탑으로 중국에서 전래된 목탑양식을 석재로 바꾸어 표현한 것이다. 현재 6층의 탑신이 남아 있으나 일부가 붕괴되어 시멘트로 보수한 상태이며 원래는 7층 또는 9층이었다는 설이 있다. 낮고 작은 기단 위에 건립되었으며 각 층의 탑신은 각 면이 3칸으로 되어 있다. 1층 탑신은 네 귀퉁이에 배흘림이 분명한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에 탱주를 새겼으며 각 면의 중앙에는 내부로 통하는 문이 1개씩 설치되어 있다. 내부 중앙에는 십자로 교차되는 점에 탑을 지탱하는 석조의 찰주가 세워져 있다. 각 층의 옥개는 얇고 넓은 편으로 중앙에서 직선으로 뻗어 내려오다가 끝부분에서 약간 위로 올라간 모습이며 옥개석은 3단받침으로 되어 있다. 2층 탑신은 1층에 비해 높이가 현저하게 낮아졌으며 옥개부분도 위로 올라갈수록 체감되어 전반적으로 안정된 느낌을 준다. (다음백과)

익산 미륵사지(사적 제150호)

   발굴을 통해 확인된 가람배치를 보면 동탑(東塔)과 서탑(西塔)이 있고 그 중간에 목탑(木塔)이 있으며, 각 탑의 북편에 금당의 성격을 가진 건물이 하나씩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들 탑과 금당을 한 단위로 구분하는 회랑(回廊)이 있어 동쪽은 동원(東院), 서쪽은 서원(西院), 중앙은 중원(中院)이라는 개념의 삼원식(三院式) 가람형태임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가람배치는 동양 고대가람 연구에서 밝혀진 바 없는 전혀 새로운 형식의 특수한 가람이다. 미륵사지는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삼탑삼금당이 배치된 사찰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아울러 백제무왕이 세운 곳으로서 최근 발굴된 사리기를 통해 창건연대가 정확히 밝혀져, 백제사와 불교미술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이다. (다음 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익산 미륵사지 석탑사리오호, 내호

  국보 제11호. 백제 최대 사찰이었던 미륵사지의 3원(三院) 가운데 서원의 금당 앞에 있는 탑으로 오랜 세월 동안 무너져 거의 절반 정도만 남았다. 현재 남아있는 국내 최대의 석탑이며 동시에 가장 오래된 석탑이기도 하다. 2009년 1월 해체수리 중에 초층 탑신 내부 심주에서 완전한 형태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사리장엄에는 금제사리호, 유리사리병, 청동합 6점, 은제관식 2점, 은제과대장식 2점, 금동덩이(金銅鋌) 3점, 금제 족집게 1점, 유리구슬 외 다수 유물이 있었다. 특히 이 가운데 기해(己亥)년명 탑지를 통해 당시 왕비가 639년(무왕 39)에 탑을 건립하면서 사리를 봉안했음이 확인되었다.

카드의 전면은 동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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