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 광 인 여 행.........................1.220,
대전광역시 대덕구 송천동, 동춘당.
동춘당(同春堂)
이 건물은 효종 때 병조판서를 지낸 송준길(宋浚吉)이 자신의 호[同春堂]를 따서 건축한 별당이다. 이 별당의 서북측에는 송준길의 고택인 사랑채와 안채·사당 등이 독립된 건물로 건축되어 있다. 동춘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一자 모양의 평면으로 된 단층팔작지붕이며, 앞면을 널찍하게 다듬은 돌로 쌓은 단층기단 위에, 다듬은 돌 초석을 놓고, 방주(方柱)를 세워 주두 없이 직접 굴도리를 받친, 민도리집 양식이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대전송촌 : 동춘당(同春堂)
가구는 오량으로 대들보를 앞뒤의 평주 위에 걸고 높이가 낮은 동자기둥을 세워 종보를 받치고 다시 그 위의 판대공에 소로만을 짜넣어 종도리 밑의 장여를 받치고 있다. 서쪽에는 정면 1칸, 측면 2칸의 큰 온돌방을 두고, 그 동쪽에는 정면 2칸, 측면 2칸의 대청을 두었다. 방의 전면과 대청의 전면·측면·뒷면에는 좁은 툇마루를 달았는데 난간은 없다. 대청의 전면 창호는 띠살로 된 들어열개인데, 그 중 하나에는 작은 들창을 달아 겨울철에는 들어열개 분합문을 닫고 지낼 수 있도록 하였다. 방의 창호는 띠살로 된 여닫이창이다. 처마는 홑처마이고 팔작지붕으로 막새기와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 건물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별당건축물로 규모도 크지 않고 선비의 기질을 잘 나타낸 간소한 건물이다.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조선 효종 1600년대에 은진 송씨 송준길이 만든 별장이다. 원래 이곳은 조선시대에는 양반들의 휴양지로 사용된 장소이며 중요민속문화재 제289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후기 기호학파의 대표적인 학자인 동춘당 송준길(1606~1672)의 5대조 송요년(1429~1499)이 15세기 후반에 처음 지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몇 차례 옮겨 지었으며, 현재는 1835년 원래 위치(대덕구 동춘당로)에 중건할 때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임진왜란 이전 충청지역 살림집의 흔적을 유추해 볼 수 있는 희소성이 있고, 상량문(上樑文) 기록 등을 통해 그 변천 과정을 명확히 알 수 있는 역사적 가치가 있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는 내·외담이 설치되어 있다. 담은 그리 높지 않지만, 안채와 사랑채의 높이를 고려하여 시선을 차단할 정도의 가림벽 역할을 하고 있어 세심한 조형성을 보여준다. 동춘당 송준길의 종가로 불천위(不遷位) 제사와 기타 제례가 아직도 그대로 전승되고 있으며, 조선 중기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집안의 생활사와 지역 향촌 사회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방대한 고문서 등이 소장되어 있다.
대전송촌 : 동춘당(同春堂)
중요민속문화재 제290호로 지정된 ‘대전 소대헌·호연재 고택’은 동춘당 송준길의 둘째 손자인 송병하(1646~1697)가 1674년 종택에서 분가하여 법천동(현재 대덕구 법동)에 건립한 고택으로, 송병하의 아들 소대헌 송요화(1682~1764)가 1714년 현재의 위치(대덕구 동춘당로)로 옮겼다. 이 고택은 조선 중기 대전지역의 살림집을 이해할 수 있는 건축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충청지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큰 사랑채와 작은 사랑채를 동시에 갖추고 있으며, 큰사랑채는 양통집 구조이다. 대청을 한쪽에 두는 방식이나 안채의 마루방과 툇마루 등을 전면뿐만 아니라 사방에 다양한 크기로 배치하는 양식은 지역적 특색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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