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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인 여행....1.072,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강화 광성보.

공룡우표매니아 2024. 11. 2. 03:00

관 광 인  여 행.....................1.072,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강화 광성보.

강화 광성보(江華 廣城堡)

    광성보. 광성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광성보는 원래 고려 무신정권 시대 몽골의 침입을 막기위해 만들어졌다. 조선 효종 대에 국방 시설을 강화도에 지음으로써 재건했다. 광성포대, 광성돈대, 용두돈대, 손돌목돈대 등의 여러 포대와 돈대가 소속되어 있는데, 이 요새가 유명해진 것은 신미양요 때 제일 치열한 격전지였기 때문이다. 광성보는 1971년 사적 제227호로 지정되었으며, 2011년 광성보에서 강화 광성보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강화 : 강화 광성보(江華 廣城堡)

    첫 번째 전투는 용두돈대에서의 포격전으로 별 피해가 없었지만 미군이 본격적으로 전투를 하면서 알려진다. 당시 광성보에는 어재연 장군 휘하 군사 500명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미군이 초지진, 덕진진을 함락하면서 광성보로 접근했다. 그 과정에서 조선군 사수 200여명에게 집중 사격을 당하지만 마침내 요새에 근접했고 조선군과 미군은 손돌목돈대에서 치열한 백병전을 벌이게 된다. 그 결과 미군은 맥키 대위 이하 3명이 전사 9명이 부상을 당하지만 조선군은 지휘관 어재연, 그의 동생 어재순, 그리고 군사 300여 명이 죽거나 다치고 20명이 포로, 100명이 자결하는 대패를 당한다. 하지만 이 전투 이후에 조선 정부의 변함 없는 태도와 여러가지 불리한 상황을 고려한 미군은 철수한다.  

    광성보는 신미양요 당시 최대 격전지였다. 1871년(고종 8) 6월 1일(양력) 초지진을 거쳐 강화해협(염하)을 따라 북상하던 미국 함대가 손돌목 근처에 도달하자 광성보에서 사격을 하였고 남쪽의 덕진진과 대안(對岸)에 위치한 덕포진에서 이에 호응하면서 함대의 북상을 막았다. 북상에 실패한 미군은 6월 10일 초지진에 상륙하여 이튿날 점령하고 이어 덕진진을 함락한 뒤 광성보로 향하였다. 미군 상륙 부대의 마지막 공격 목표였던 광성보에는 진무중군 어재연(魚在淵)이 지휘하는 350여 명의 조선군이 방어하고 있었다. 군함의 함포 지원 사격을 받으며 공격한 미군은 조선군을 전멸시키고 광성보를 점령하였다. 당시 돈대의 성첩과 문루가 파괴되었으며 ‘수(帥)자기’를 비롯한 깃발과 화포 등이 미군에게 노획되었다.

강화 : 강화 광성보(江華 廣城堡)

    현재 사적으로 지정된 경내 전체가 광성보의 영역으로 인식되지만 보(堡)는 개별 성곽이나 방어 시설이 아니라, 군사 지휘부이다. 광성보의 본진이 따로 존재하였고 옛 지도를 통해 광성돈대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나 지금까지 구체적인 위치는 확인되지 않았다. 광성보 경내에는 신미양요 당시 전사한 어재연 · 어재순 형제와 조선군을 기리기 위해 1873년 건립한 2기의 순절비인 쌍충비(雙忠碑)와 무명 순국자들의 시신을 7기의 무덤에 나누어 합장한 것으로 전하는 신미순의총(辛未殉義塚, 순절묘단)이 조성되어 있다. 광성보는 17~18세기 보장처 강화와 도성의 방어 체제 구축과 관련된 유적 가운데 하나이다. 1871년 신미양요 당시의 최대 격전지로서 조선 후기 국토 방위와 국난 극복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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