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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인 여행 .....685. 전라북도 정읍시, 전봉준장군과 동학농민혁명 1894.

공룡우표매니아 2022. 11. 23. 03:00

관광인 여행 .................. 685. 

전라북도 정읍시, 전봉준장군과 동학농민혁명 1894.

 

정읍덕천 : 전봉준장군과 동학농민혁명 1984.

    전봉준은 농민대중의 밑으로부터의 힘을 결집하여 봉건제도를 타파하고, 동시에 한국에 침투해 들어오는 일본의 자본주의적 진출을 저지함으로써, 국가의 근대화를 이룩하려 했다. 비록 그의 변혁 의지는 일본의 군사력 앞에서 좌절당하고 말았지만 그가 영도한 갑오농민전쟁은 조선의 봉건제도가 종말에 이르렀음을 실증했고, 민중을 반침략·반봉건의 방향으로 각성시킴으로써, 이후의 사회변혁운동과 민족해방운동의 진전에 원동력이 되었다. 본관은 천안. 자는 명숙, 호는 해몽. 왜소한 체구 때문에 녹두라 불렸고, 훗날 녹두장군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전라도 고창군 당촌리에서 전창혁(全彰爀)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고부군 향교의 장의를 지낸 바 있는 향반이었던 점으로 보아서 몰락양반, 즉 잔반 출신으로 보인다. 아버지도 의협심이 강하여 군수의 학정에 항거, 민소(民訴)를 제기했다가 구속되어 심한 매질을 당한 끝에 장독으로 죽었다고 한다.

    전봉준(全琫準) : 봉건제도를 타파하려 했던 동학의 지도자로 별명은 '녹두장군'. 전라북도 고부군의 잔반 출신으로 1890년 동학에 입교하여 1892년 고부지방의 접주로 임명되었으며 제1차 농민전쟁 당시 폐정개혁안을 제시하였다. 제2차 농민전쟁에서는 친일적인 개화파정권을 타도하고 전국 차원에서 폐정을 개혁하고자 했다. 그의 변혁 의지는 일본군 의해 좌절당했지만 조선의 봉건제도가 종말에 이르렀음을 실증했고, 민중을 반침략, 반봉건의 방향으로 각성시킴으로써, 이후의 사회변혁운동과 민족해방운동에 원동력이 되었다.

정읍덕천 : 전봉준장군과 동학농민혁명 1984.

    조선의 보호국화를 추진했던 일본은 평양성전투에서 청군을 결정적으로 격파한 뒤, 개화파정권의 요청을 받아들여 농민군 토벌에 발벗고 나섰다. 전봉준은 삼례에서 각지에 반일기의를 호소하고, 항일전쟁을 위한 군비를 준비하여 삼례를 출발, 논산에 둔거하면서 농민군을 널리 모집하여 2만여 명의 병력을 확보했다. 전봉준은 여러 차례 경군과 충청감영군 그리고 충청감사 박제순(朴齊純)에게 항일을 위한 민족연합전선을 제의했으나 모두 거부당했다. 공주로 진격하여 약 2,500명의 정부군 및 약 200명의 일본군과 2차례에 걸쳐 처절한 공주 공방전을 전개했으나 결정적으로 패배하여 제2차 농민전쟁은 좌절로 끝나고 말았다. 전봉준은1894년 12월 2일 순창군 피노리에서 체포되어 일본군에게 넘겨져 서울로 압송되었다. 1895년 2월 9일부터 3월 10일까지 법무아문권설재판소에서 5차에 걸쳐 재판을 받은 후 사형을 언도받았고, 3월 30일 손화중·최경선·김덕명·성두한과 함께 처형당했다. (다음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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