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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희극인 기념우표의, 다양한 초일 자료 (M/C) (FDC)

공룡우표매니아 2022. 10. 31. 03:00

한국의 희극인 기념우표의, 다양한 초일 자료

(맥시멈 카드 M/C)   (초일 커버 FDC)

발행일 : 2022. 10.  25.   우표명칭 : 한국의 희극인   우표번호 : 3623 ~ 3624   
발행종수 : 2종    디자인 : 구봉서. 남보원    디자이너 : 김미화    용지 : 평판원지
인쇄/색수/특수처리 : 평판/4. 금분/은박    인쇄처 : 한국우편사업진흥원/Cartor

 

   텔레비전이 귀했던 시절, TV 앞에 모여 앉은 사람들은 시대상을 반영한 콩트와 대중을 대변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며 함께 울고 웃었습니다. 우정사업본부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한국의 희극인 기념우표를 발행하여 코미디가 우리에게 전하는 의미를 되새겨보려 합니다.

   무대와 영화, 라디오와 TV를 종횡무진 누비며 큰 존재감을 보여준 구봉서(1926~2016)는 ‘한국 희극계의 대부’이며 그의 삶 자체가 ‘코미디의 역사’라고 불립니다. 가수 김정구 형제가 이끄는 태평양가극단에서 아코디언 악사로 활동하다가 연기자로 전향한 구봉서는 1958년에 영화 〈오부자〉에서 4형제 중 막내 ‘걸’ 역할을 맡아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때부터 ‘막둥이’로 불리며 당대 최고의 희극배우로 발돋움한 그는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형님 먼저, 아우 먼저’와 같은 유행어를 남겼습니다. 구봉서는 한국 코미디 역사에서 가장 많은 코미디 영화의 주연을 맡은 배우이자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은 코미디언으로 평가됩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92년 옥관문화훈장, 2013년 제4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습니다.

   원맨쇼의 달인 남보원(1936~2020)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 한국 코미디계를 평정한 인물입니다. 평안남도 출신으로 이른바 실향민 1세대였던 그는 1963년 영화인협회가 주최한 ‘스타탄생 코미디’에서 1위로 입상하며 방송계에 발을 들였습니다. 전국 팔도 사투리를 지역민 수준으로 구사했던 남보원은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입담과 뱃고동, 기차, 전투기 등의 소리를 비롯하여 탁월한 성대모사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독보적인 주특기로 한국 코미디계의 대표주자로 활동한 그는 2007년 화관문화훈장, 2016년 제7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습니다.

   희극배우이자 영화배우였던 구봉서는 1960~70년대 유명한 코미디언이자 영화배우로 1958년 영화 〈오부자〉에서 막내 역으로 인기를 얻어 현재까지도 ‘막둥이’로 불린다. 평양에서 의료상을 하는 가정에서 부유하게 자랐으며 1945년 대동상업학교를 졸업하고 1947년 일본 동양음악전문학교를 수료했다.

    남보원(본명김덕용, 金德容, 1936년 3월 5일~2020년 1월 21일)은 대한민국의 희극 배우이다. 사람과 사물의 소리를 흉내내는 성대모사가 특기였고, 그 중 일왕 항복 방송, 한국전쟁 폭격기 성대모사 등이 뛰어났다.

   태평양가극단, 백조가극단에서 활동했으며 육군 군예대와 해병 군예대를 거쳐 1956년 영화 〈애정파도〉로 데뷔했다. 〈오부자〉 출연 이후, 1961년〈구봉서의 벼락부자〉에서 1970년 〈구봉서의 구혼작전〉까지 10년 동안 ‘막둥이 전성시대’를 구가했다. 특히 외딴 섬 아이들을 인솔해 서울로 수학여행 가는 마음 착한 교사역을 했던 1969년 유현목 감독의 〈수학여행〉은 큰 호평을 받았다. TV프로그램 ‘웃으면 복이와요’·‘일요일밤의 대행진’ 등에 배삼룡·이기동·서영춘 등과 출연하며 ‘구봉서·서영춘·배삼룡 트로이카’시대를 구가했다. (다음백과)

   1936년 평안남도 순천군에서 태어났다. 1951년 1·4후퇴 때 월남했다. 성동공고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정치학과를 중퇴했다. 1960년 연극배우로 첫 데뷔하였고 1963년 영화인협회 주최 '스타탄생 코미디'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데뷔했다. 백남봉과 함께 투맨쇼를 진행하였다. 1985년 9월 평양 공연을 위한 예술공연단의 일원으로 방북하기도 하였다. 1997년 제4회 대한민국연예예술상 대상 화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20년 1월 21일 화요일 오후 3시 40분 폐렴으로 인해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순천향대학교 부속 서울병원에서 향년 85세로 별세했다.( 위키백과)

   개인 방송과 오티티(OTT) 채널 등 새롭고 다양한 매체가 등장하면서 코미디 프로그램이 연달아 종영하게 되었고, 코로나19의 여파로 희극인들이 설 자리가 더욱 좁아져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한국 코미디의 부활을 기대하며, 어려운 시절 대중에게 웃음을 선사했던 코미디 거장들을 기념우표로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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