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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인 여행 .....598. 전남 해남군 우수영의 명량대첩비

공룡우표매니아 2022. 5. 7. 03:00

관광인 여행 .............................598.  

전남 해남군 우수영의 명량대첩비(鳴梁大捷碑)

 

우수영 : 명량대첩비(鳴梁大捷碑) 

   명량대첩비는 1597년 9월 16일의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충무공 이순신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1688년(숙종 14) 3월 이곳 문내면 동외리에 건립했다. 이순신이 해남 전라우수영과 진도 사이의 울돌목 해협을 흐르는 급류를 이용하여 13척의 배로 133척의 일본함선을 격침 혹은 격파하여 해전을 승리로 이끈 사실을 기록한 비석이다. 숙종 임금은 명량대첩의 의의를 기리고 그 뜻을 후손에게 영원히 전하기 위해 비석을 세우도록 했다. 비문은 1686년에 쓰인 것이나 비가 건립된 것은 2년 뒤인 1688년이며, 전라우도 수군절도사 박신주가 건립했다. 비석은 받침돌 위에 비 몸을 얹고, 구름무용무늬를 새긴 머릿돌을 얹었다. 비문은 예조판서 이민서가 짓고, 판돈령부사 이정영이 해서체로 글씨를 썼으며, 홍문관 대제학 김만중이 횡서로 된 제자 ‘통제사 충무 이공 명량대첩비(統制使忠武李公鳴梁大捷碑)’ 12자를 써서 1688년 3월에 건립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패전, 만행, 약탈 관련된 기록이나 자료, 유적지는 모두 소각하거나 철거한다는 정책을 시행했다. 다수의 일본인이 문화재를 도굴하거나 왜란 관련 유적지를 훼손, 철거하는 데 앞장섰다. 1942년 전라남도 경찰은 명량대첩비 등을 철거하라는 조선총독부의 지령을 받았다. 경찰은 인부, 목수, 학생들을 동원하여 높이 2.67미터, 폭 1.14미터나 되는 비석을 500미터 떨어진 우수영 선창으로 옮겼으며 비각은 흔적도 없이 제거했다. 조선총독부는 한때 대첩비를 아예 없애버릴 계획을 세웠으나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서울로 옮겨 경복궁 근정전 뒤뜰에 묻었다.

우수영 : 명량대첩비(鳴梁大捷碑) 

   1945년 광복이 되자 우수영 지역 유지들은 명량대첩비를 되찾아 복구하기 위해 ‘충무공 유적 복구 기성회’를 조직하고 전라남도 경찰부와 조선총독부에 수소문한 끝에 대첩비의 소재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교통운반 수단이 여의치 않았던 당시로서는 대첩비를 우수영으로 옮기는 일이 쉽지 않았다. 결국 미군정청(美軍政廳)에 협조를 요청하여 비석을 미군 트럭에 실어 서울역으로 옮긴 후 목포까지는 열차로, 목포에서는 다시 선박을 이용하여 우수영 선창으로 가져왔다. 1947년 이곳 해남 남쪽 끝 해안지역 학동리에 비석을 다시 세웠다. 이어 비석을 보호하는 비각을 짓기 위한 모금 운동이 시작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1950년에야 비각이 완공되어 비석을 세우게 되었다. 그동안 해남 충무사 경내에 있던 비석과 비각은 2011년 3월 본래의 설립지인 현재의 위치로 이전해 왔다. 해남 명량대첩비는 1969년 6월 16일 보물 제503호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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