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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YWCA 창립 100주년 기념우표 초일커버

공룡우표매니아 2022. 4. 3. 03:00

한국YWCA 창립 100주년 기념우표 초일커버(FDC)

우표번호 : 3570.    디자인 : 한국YWCA 창립 100주년 기념 로고.    발행일 : 2022. 3.  25. 

디자이너 : 유지형. 

인쇄 및 색수 : 평판/4도/투명필름    용지 : 평판 원지.    인쇄처 : 한국우편사업진흥원 / Carytor 

 

  기독교정신을 바탕으로 여성의 자립을 돕고 건강한 공동체를 확립하는 데 앞장서는 한국YWCA가 창립한 지 올해로 100년이 되었습니다. 한국YWCA는 일제강점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여성 인권 운동을 비롯하여 평화통일, 탈핵·기후·생명 운동 등 다양한 시민운동을 펼쳐온 단체입니다.

   한국YWCA는 전 세계 108여 개국 글로벌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는 세계YWCA의 정식 회원국입니다. ‘YWCA’라는 이름이 상징하듯 청년운동(Young), 여성운동(Women), 기독교운동(Christian), 회원운동(Association), 국제운동(Global)을 펼치는 단체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 여성은 식민 지배와 봉건사회 관습이라는 이중 억압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에 여성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조선에 반드시 YWCA를 세워야 한다는 데에 뜻을 모은 젊은 기독 여성들이 1922년에 여성 인권 향상과 복음 전파를 위해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한국YWCA의 전신)을 조직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세워진 한국YWCA는 주체적인 여성 회원이 뿌리이며 ‘만인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기본 정신을 준수합니다. 초창기 한국YWCA는 여성들을 괴롭히던 조혼 및 공창제도 폐지 운동, 가족법 개정운동 등을 통해 여권 신장을 도모했고, 1970년대 후반부터는 직업개발과 훈련, 환경, 평화통일, 소비자운동 등을 전국적으로 전개했습니다. 그리고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후 창조질서의 회복과 생명의 존중이라는 가치 하에 탈핵기후생명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는 한편, 여성폭력 철폐 운동, 여성의 경제적 능력 향상을 포함하여 정의 운동으로서의 성평등 운동도 다방면으로 펼치고 있습니다.

   다채로운 배경이 특징인 이번 기념우표에는 과거 세대의 여성과 미래 세대의 청소년이 기쁘게 손을 맞대고 있는 진취적인 모습과 올바른 사회적 변화를 위해 기도하는 여성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변지에는 한국YWCA 창립 100주년 기념 엠블럼의 가치인 세상을 바꾸는 물결 모습이 실려 있습니다. 이번 기념우표를 통해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 온 한국YWCA의 사회적 헌신을 기억하고, 사회 정의와 평화를 실현해 나갈 한국YWCA의 미래 모습도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한국YWCA연합회 : 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연합회(Young Women's Christian Association of Korea , 大韓女子基督 敎靑年會聯合會) 젊은 여성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하고, 책임있는 행동으로 사랑을 실천하게 함을 단체의 목적으로 한다. 영문 머리글자를 따서 보통 '대한 YWCA 연합회', 또는 '와이'라고도 한다. (다음백과)

   1922년 김활란·김필례·유각경 등이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라는 이름으로 창설했다. 이어 1924년에는 미국에서 열린 YWCA 세계대회에 참가해 세계 YWCA에 가입했다. 조직은 서울·광주·대구·선천·평양·목포·원산·함흥 등 지방으로 확산되었고 전문학교와 기독교계 고등학교에도 학생 YWCA가 조직되었다. 일제에 의해 강점된 상황 속에서 처음에는 강연회·성경공부 등을 통해 여성을 각성시키는 데 활동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그 활동은 차차 국산품장려운동, 금주, 금연, 공창·조혼 폐지를 위한 사회운동으로 확대되었다. 그외 양재·요리강습·육아와 생활개선운동을 전개했고 배우지 못한 어린이와 부녀자들을 위해 야학을 운영하기도 했다.

   193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일본제국주의는 군국주의와 내선일체의 정책을 실시하고 사회운동 단체들에 대한 탄압을 강화했고, 따라서 YWCA 역시 일시적으로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이 일제로부터 해방되자 1946년 한국 YWCA 운동이 재개되어 이사회에서 김활란을 회장으로 선출했다. 그리고 1947년에는 기관지 〈한국 YWCA〉가 창간되었다. 6·25전쟁 이후 여성운동은 전반적으로 침체기에 들어갔다. 이런 전반적 상황 속에서 YWCA는 여성문제에 접근하기 시작해 친족법과 상속법 등에 평등조항을 신설하도록 요구했고, 혼인신고 강조운동과 축첩공무원 정비운동도 전개했다.

   1960년대부터 YWCA는 정치·경제·사회 문제에 대처하면서 소수 여유 있는 여성층에 한정되었던 운동의 방향을 차차 공장과 농촌지역의 기층여성들에까지 확대해 활동범위를 넓히고자 했다. 구체적으로 소외계층을 위한 봉사활동, 생활개선을 위한 강좌를 실시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소비자운동도 전개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이후에도 저소득 근로여성들의 교양과 기술지도, 파출부 훈련, 소녀의 집 운영, 공단 내 노동교실 및 시민교실 개설 등과 같은 사업을 벌였다. 이 시기 YWCA 운동은 회관 중심에서 지역적인 조직활동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 

   1995년 서울에서 세계 YWCA 100주년 기념 세계여성지도자회의, YWCA 세계대회를 개최했으며 폭력추방운동, 딸사랑운동, 여성 지도력의 사회화운동을 전개했다. 1997년부터 '북한 어린이에게 분유보내기 운동'을 전개하여 2차례에 걸쳐 전지분유 총 25톤을 북한에 전달했으며 전국의 음식업소를 대상으로 '환경을 사랑하는 음식점'을 선정하여 환경보호운동과 음식물 쓰레기 운동에 앞장섰다. 2000년부터는 '환경사랑음식점'으로 명칭을 바꾸고 전국적으로 확대·실시하고 있다. 이밖에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 나눔터를 운영하는 재활용공공근로사업을 실시하여 여성 실직자에게 일터를 제공했다. 2000년 7월 현재 대한 YWCA는 53개의 지방 YWCA로 조직되어 있다.

   회원은 성인회원, 대학생회원, Y-틴 회원, 어린이회원, 회우(YWCA 목적에 찬동하는 남자회원)로 나누어져 있다. 운영은 연합회에 가입된 지방 YWCA가 3년에 1번씩 열리는 전국대회에 대표를 파견해 연합회 실행위원을 선출하고 프로그램 및 정책결정에 참여하게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채택된 프로그램은 연합회를 비롯한 각 지방의 873명의 실무자와 6,849명의 자원지도자들의 협력으로 운영된다. 연합회 실행위원과 각 지방YWCA의 회장으로 구성되는 연합위원회에서 1년에 2회 사업보고와 평가를 한다. (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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