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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인 여행 ..... 496. 경기도 여주시의 세종대왕과 영릉

공룡우표매니아 2021. 10. 1. 03:00

관광인 여행 ..... 496. 

경기도 여주시의 세종대왕과 영릉(世宗大王 寧陵)

 

능서 : 세존대왕과 훈민정음(世宗大王訓民正音)

   세종대왕(世宗大王) - 조선 제4대 왕이자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조선 초기 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왕. 1418년 6월 왕세자에 책봉된 후 8월에 태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하여 조선 초기 국가의 기틀이 되는 전반적인 제도를 갖추었고, 조선왕조가 지배 기반으로 삼은 유교문화를 융성하게 했다. 특히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백성들이 쉽게 쓰고 읽을 수 있도록 했다. 농사에 도움이 되는 천문기구를 개발하고 도량형을 정비했고, 출판사업을 크게 일으켰다. 대외적으로 여진과 왜를 정벌하고 명의 요구를 적절히 조율했다. 조선시대 문화의 융성에 이바지하고 과학기술을 크게 발전시키는 한편, 축적된 국력을 바탕으로 국토를 넓혔다. 이름은 도(이미지). 자는 원정(元正). 태종의 셋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원경왕후(元敬王后) 민씨이다. 비(妃)는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심온(沈溫)의 딸 소헌왕후(昭憲王后)이다. (다음백과)

능서 : 세존대왕과 훈민정음(世宗大王訓民正音)

  훈민정음(訓民正音) - 조선 4대 임금 세종이 1443년 창제하고 1446년 반포한 한국 고유의 문자체계, 또는 그를 설명한 책. 음소문자이면서 음절문자의 성격을 동시에 갖는다. 창제 당시에는 28자였으며, 28자를 이용한 병서·연서 문자와, 성조를 표시하는 방점이 쓰였다.오늘날에는 24자만 쓰인다. 글자의 창제과정에는 집현전 학자들의 연구가 뒷받침되었다. <훈민정음>은 훈민정음을 해석한 책이름인데, 1940년 7월에 발견되어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었으며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의 〈훈민정음〉 서문에 자주, 애민, 실용 정신이 반영된 세종의 어지가 실려 있으며 글자에 대한 설명과 사용법이 들어 있다. (다음백과)

능서 : 세종대왕과 영릉(世宗大王寧陵)

  세종대왕(世宗大王) - 1408년(태종 8) 충녕군(忠寧君)에 봉해지고, 1412년 충녕대군에 진봉(進封)되었다. 당시 왕세자는 형인 양녕대군(讓寧大君)이었으나, 태종은 충녕이 왕위에 적합하다고 판단해 1418년 6월 세자로 책봉했다. 같은해 8월 태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했다. 세종은 태종이 이룩한 왕권강화를 바탕으로 유교정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여러 정책을 시행했다. 의정부의 권한을 제한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태종 때 실시된 6조직계제(六曹直啓制)를 이어받아 국정을 직접 관장했다. 그후 왕권이 안정되자 6조직계제를 폐지하고 의정부서사제(議政府署事制)를 부활했다(1436). 이는 집현전에서 성장한 많은 학자들이 의정부의 지나친 권력행사를 견제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능서 : 세종대왕과 영릉(世宗大王寧陵)

  영릉(寧陵) - 사적 제195호. 능호는 1674년(현종 15)에 정하였다. 영릉은 현 동구릉(東九陵)자리에 병풍석(屛風石)을 갖춘 왕릉을 조영하였는데 1673년 석물에 틈이 나 빗물이 스며들 염려가 있다 하여 여주로 옮겼다. 다음해 왕비 인선왕후의 능이 동원(同原)에 택정(擇定)되어 왕릉 앞에 비릉(妃陵)을 써서 앞뒤로 나란히 쌍분(雙墳)을 이루게 하였다. 왕릉에만 곡장(曲牆: 굽은 담장)이 있고, 앞에 있는 왕비릉과 쌍분임을 나타내는 외에 비릉도 마찬가지로 석물을 갖추고 있다. 이 능을 보호하기 위하여 영(令, 종5품) 1인과 참봉(종9품) 1인을 두어 관리하게 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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