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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인 여행 ..... 463. 충남 서산시의 해미읍성

공룡우표매니아 2021. 7. 22. 03:00

관광인 여행 ..... 463.  

충청남도 서산시의  해미읍성(海美邑城)

 

해미 : 해미읍성(海美邑城)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116호로 지정된 해미읍성은, 조선시대 건축된 성 중에서는 보존 상태가 상당히 양호한 성으로, 총 길이는 1,800m이며, 성벽 높이는 5m이다. 성벽 밖에 2m 깊이의 해자를 팠다. 북한산성, 남한산성, 삼년산성 등이 산에 쌓은 산성이라면, 진주성, 공산성, 사비성은 강을 낀 산에 건설되었는데 해미읍성은 평지에 타원형으로 지은 것이 특징으로 대략 달걀 모양과 비슷하다. 1417년(태종 17년)에 축성을 시작하여 1414년(태종 14) 충청병마절도사영이 덕산(德山)에서 이곳으로 이설되었다. 1421년(세종 3년)에 축성이 완료되었다. 해미읍성은 원래 왜구의 출몰에 대응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건축되었는데, 충청도 병마절도사가 이 성에 주둔한 것도 그 때문이다. 세조때에 군사 제도가 진관체제(鎭管體制)로 개편되면서도 이 역할은 여전하여 충청도 지역의 주요 군사거점으로서 역할을 수행하였다. 1651년(효종 2년)에 병마절도사가 청주로 이전하면서 해미현 관아가 옮겨와 해미읍성이 되고, 문무를 겸한 겸영장이 배치되며 호서좌영으로 명칭이 바뀐 이후, 호서 지방 행정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해미읍성이란 명칭도 이때 개명된 것으로 본래 이름은 '해미내상성'(海美內廂城)이었다.

 

  한국의 교회 역사 중에서는 약 3천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천주교 박해로 처형당한 천주교 순교 성지 중의 한 곳이다. 조선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당시 천주교의 교인이란 죄명으로 해미읍성으로 열흘간 귀양을 왔다. 1790년대 정조 때부터 시작된 천주교 박해는 1866년 병인양요와 1868년 오페르트 도굴 사건 이후 더욱 극심해진다. 이에 해미진영의 겸영장은 내포지방 13개군현의 군사관을 쥐고 있었으므로 해당 자택의 교도들을 모두 잡아들여 모두 해미읍성에 처형하였는데 그 수가 무려 1,800여명이상 이었다고 전한다. 2014년 8월 17일 교황 프란치스코가 방문하여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 미사를 주례하였다.

해미 : 해미읍성(海美邑城)

  이순신은 1576년(선조 9년) 무과 급제하고 권관과 훈련원 봉사를 거쳐 세번째 관직으로 1579년(선조 12년)에 충청병마절도사의 군관으로 부임하여 해미읍성에서 10개월 간 근무하였다. 당시 전하는 기록에 의하면 '공은 구차하게 낮고 고달픈 자리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뜻을 꺾고 남을 따른 적이 한번도 없었으며 상관인 주장에게 부정한 사실이 있으면 극진히 말하며, 이를 바로 잡았고, 청렴한 자세로 자신의 몸을 단속하면서 털끝만큼도 사적인 감정을 개입시키는 법이 없었다고 전한다. 일제 강점기였던 1914년에 군현제가 폐지되고 해미현이 서산군에 통합되면서 읍성은 폐지되었다. 폐지 이후에는 성 안에 면사무소, 초등학교 등 기관과 민가가 들어섰다. 해방 후 1963년 1월 21일 사적 116호로 지정되었다. 1970년대부터 복원공사가 시작되었으며 성내 건물을 철거하고 동헌, 객사, 내아 등을 복원하였다. 2000년대부터 정비공사가 시작되었으며 성내 동헌, 객사, 내아 등을 정비하였고, 2004년부터 해미읍성 역사체험축제가 개최되기 시작하였다. 서산시에서는 해미읍성을 이용한 축제와 관광 상품을 개발하고 있으며, 매년 10월에 해미읍성 역사체험축제(서산해미읍성문화축제)를, 매년 4월부터 10월까지 해미읍성 전통문화공연을 개최하고 있다. (위키백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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