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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인 여행 ........252. 충남 천안시의 독립기념관(안중근의사 서거110주년)

공룡우표매니아 2020. 3. 31. 04:00

관광인 여행 ........252.     

충남 천안시의   독립기념관(안중근의사 서거110주년)



천안 : 독립기념관 (안중근(安重根)의사 서거110주년)

  1909년 중국 하얼빈에서 초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여 처단한 구한말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순흥, 자는 응칠, 세례명은 토마스로 양반가에서 태어났으며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이후 1906년부터 계몽운동을 벌였다. 1907년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자 강원도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1909년 단지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그해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가 회담을 마친 뒤 환영군중 쪽으로 갈 때 권총 3발을 쏘아 사살했고, '대한만세'를 외친 뒤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사형을 언도받아 1910년 여순 감옥(뤼순 감옥)에서 순국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디자이너 : 전희한                      이혜옥                           신재용

                             발행일 : 1987. 8.  15                1999. 3.  12                    2014. 3.  10

                       사용우체국 : 독립기념관우체국            천안우체국                      천안우체국


영화정보 : 윤제균 감독의 신작이자 대한민국 최초 오리지널 뮤지컬 영화 <영웅>이 올 여름 개봉을 확정 짓고, 안중근 의사 서거 110주년을

               맞아 첫 포스터와 예고편을 최초 공개했다, 는 소식...


천안 : 독립기념관 (안중근(安重根)의사 서거110주년)

     안중근의사가 법정에서 말한 이토 히로부미의 죄악 15가지 :

     하나. 일천팔백육십칠년, 대일본 명치 천황 폐하 부친 태황제 폐하를 시살(弑殺)한 대역부도의 짓.
     둘. 일천팔백구십사년, 자객들을 황궁에 돌입시켜 대한 황후 폐하를 시살한 짓.
     셋. 일천구백영오년, 병사들을 개입시켜 대한 황실 황제 폐하를 위협해 강제로 다섯 조약을 맺게 한 짓.
     넷. 일천구백영칠년, 다시금 병사들을 이용해 칼을 뽑아들고 위협하여 강제로 일곱 조약을 맺게 한 후 대한 황실 황제

          폐하를 폐위시킨 일.
     다섯. 한국내 산림과 하천 광산 철도 어업, 농, 상, 공업 등을 일일히 늑탈(勒奪)한 짓.
     여섯. 소위 제일 은행권을 강제하여 한국 내의 땅들을 억지로 팔게 만든 죄.
     일곱. 국채 일천 삼백만원을 한국에 강제로 지게 한 짓.
     여덟. 한국 학교 내의 서책을 압수하여 불사르고, 내외국의 신문을 인민들에게 전달하는것을 막은 짓.

서울중앙 : 안중근(安重根)의사 서거110주년

     아홉. 나라의 주권을 되찾고자 하는 수많은 의사들의 봉기를 폭도라며 쏴죽이거나 효수하고 심지어 의사들의 가족까지

            십수만인을 살육한 짓.
     열. 한국 청년들의 외국 유학을 금지한 짓.
     열하나. 소위 한국 정부의 대관이라는 오적 칠적 등 일진회 놈들을 통해 일본의 보호라는 헛소리를 운운한 짓.
     열둘. 일천구백구년 또다시 거짓으로 다섯가지 늑약을 맺게 한 짓.
     열넷. 한국自 일천구백오년 都無安日 이천만 생령의 살육의 곡소리가 하늘에 끊이질 않고 포성과 총알이 비오듯 쏟아

             져 숨쉴틈 없는 와중에도 한국이 무사태평한것처럼 명치 천황을 속인 짓.
     열다섯. 동양 평화의 영위를 파괴하여 수많은 인종의 멸망을 면치 못하게 한 짓.

천안 : 독립기념관 (안중근(安重根)의사 서거110주년)

  1910년 2월 14일에 사형 선고를 받았고, 이후 3월 26일 오전 10시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이 때가 그의 나이 32세였다. 그는 유언으로 자신의 유해를 하얼빈 공원에 묻었다가 고국이 해방되면 그때 고국의 땅에 묻어달라는 말을 남겼다. 그가 순국 후 두 동생이 유해를 인수하기 위해 찾아왔지만, 일본 당국은 안중근 의사의 묘지가 독립 운동의 성지가 될 것을 우려해, 온갖 트집을 잡으며 유해를 끝끝내 넘겨주지 않았다. 2020년 3월 26일에 안중근 의사 순국 110주기를 맞이하게 되지만, 안타깝게도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아직도 발견되지 않았다. 1970년대에 안중근 의사의 조카인 안우생 씨를 단장으로 하여 조사를 벌였고, 1986년에도 조사를 벌였지만 둘 다 실패하였다. 또한 뤼순 주변은 대부분 1930년대 이후 여러차례 개간되어 이미 1910년대의 흔적은 거의 찾을 수 없고, 2008년 남북 공동으로 진행한 발굴 사업에서도 결국 유해를 찾지 못해 사실상 그의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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