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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인 여행 .......209. 경상북도 청도의 새마을운동 발상지기념관 외

공룡우표매니아 2019. 12. 30. 04:00

관광인 여행 .......209.  

경상북도 청도의 새마을운동 발상지기념관



청도유천 : 새마을운동 발상지기념관

  새마을 운동 발상지 기념관은 새마을 운동이 청도군 청도읍 신도리에서 발상했음을 기념하고 새마을 정신의 교육과 새마을 운동의 국내외 홍보를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공한 국민 운동인 새마을 운동이 청도군 청도읍 신도리에서 발상되었음을 기념하고 새마을 정신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청도군이 새마을 운동의 발상지로서의 위상 정립과 새마을 운동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2009년 4월 14일 개관하였다. 조국 근대화의 초석이 된 새마을 운동의 발상지를 널리 알림으로써 경제 발전의 초석을 단진 주역들의 땀방울을 되새기고, 새마을 운동의 변천사를 널리 홍보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여 새마을 운동의 성과를 재조명하고 국민정신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디지털청도문화대전 새마을운동 발상지기념과)

디자이너 : 신재용     발행일 : 2016. 4.  15     사용우체국 : 청도유천우체국


청도의 볼거리, 청도읍성. 청도읍성 밟기. 청도석빙고. 청도 유호연지

청도읍성(淸道邑城)

  경상북도 기념물 제103호. 청도읍의 중심에 축조된 읍성으로 평면이 사각형 형태이다. 규모를 살피기에는 너무 훼손되어 있어 잘 알 수 없지만 조선시대의 문헌에 의하면 성벽은 길이 1,570보(약 1.9㎞), 높이 5척 5촌(약 1.65m)이었다고 한다. 화강석을 깨뜨려 기초부는 큰돌로 깔고 그 위에 작은 돌을 섞어 가면서 흩어쌓기식으로 쌓았으며 협축법(夾築法)을 사용하였다. 지금 원형을 짐작할 수 있는 성벽은 동문지(東門址) 부근으로 성벽의 기초부가 비교적 많이 남아있는데 높이는 대략 1m정도이고 길이는 10m정도이다. 성곽의 축조년대는 1590년(선조 23)에 공사를 시작하여 2년 뒤에 완공되었으나 임진왜란을 맞으면서 동·서·북문이 소실(燒失)되는 등 크게 파손되었다고 한다. 그 뒤 소실된 문루(門樓)를 다시 새우고 성벽을 보수하여 조선조 말까지 유지되어 왔으나 일제강점기에 모두 헐어버려 지금과 같이 그 흔적마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청도읍성 밟기

  청도읍성 밟기는 부녀자들이 성곽 위에 올라가 산성의 능선을 따라 밟으며 열을 지어 도는 풍속으로, 액운을 쫓고 무병장수(無病長壽)하며 극락왕생(極樂往生)한다는 속신을 가진다. 답성놀이, 성 돌기, 성 밟기라고도 부른다. 청도읍성 밟기의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남자들은 읍성을 지키고, 여자들은 성벽을 튼튼하게 다지면서 무기로 활용할 돌을 머리에 이고 운반하던 데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단절되었던 청도읍성 밟기는 청도읍성 복원을 계기로 2009년에 재현되어 매년 시행되고 있다. 놀이방법은, 한복을 차려 입은 주민들이 머리에 돌을 이고, 농악단의 길놀이로 청도읍성 동문에서 북문까지 복원된 일부 구간을 한 줄로 걸으며 읍성 밟기를 진행한다. (디지털청도문화대전 새마을운동 발상지기념과)

청도석빙고(淸道石氷庫)

  보물 제 323호인 석빙고는 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땅을 파고 만들어둔 창고이다. 양쪽 벽을 이어주던 반원아치 형태의 홍예(虹霓)가 4군데 남아있을 뿐 천장은 완전히 무너져 불완전한 상태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남아있는 우리나라 석빙고 가운데 경주석빙고(보물 제66호) 다음으로 큰 규모이고 쌓은 연대도 오래된 것이다. 내부의 길이는 14.75m, 폭은 5m이고, 높이는 4.4m로, 그 규모는 경주석빙고 다음으로 큰 규모이다. 석빙고가 설치된 연대는 입구 좌측에 있는 석비의 내용으로 확인할 수 있다. 석비 앞면에는 축조에 참여한 인원 수, 비용, 소요재료 등이 기록되었고 뒷면에는 비를 세운 연월일과 관계인의 이름을 열거하였다. 석빙고는 1713년(숙종 39)에 건립되어 현재 남아 있는 석빙고로는 가장 먼저 축조된 것이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청도 유호연지(淸道 柳湖蓮池)

  면적 20,600여평, 둘레 약 700m, 깊이 2 m의 유호연지는 모헌 이 육선생이 무오사화(戊午士禍)로 인해 화양읍 유등리에 은거하면서 연을 심고 군자정을 세운데서 유명해졌다. 이 곳이 자연경관이 뛰어난데다가 연꽃이 만개할 때는 일대장관을 이루어 청도팔경 중 하나로 일컬어진다. 이 곳 정자를 군자정이라고 한 것은 송나라 학자 엽계 주돈의 ' 花之君子'에 의한 것으로 1531년 (중종 26년)에 창건하여 그후 중수중건을 거듭하다가 현재 정자는 1970년 중건한 것이다. 이 육 선생은 이 곳에서 강학수교로 인·의·예를 바탕으로 한 유풍진작(儒風振作)을 향내에 펼쳤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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