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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인 여행.......98. 강원의 강릉 경포대. 영월 장릉전경

공룡우표매니아 2019. 4. 25. 04:00

관광인 여행....... 98. 

강원의 강릉 경포대. 영월 장릉전경


경포대의 관광통신날짜도장은 1958년부터 현재까지 총 9번 변경되었으나 여기에는 4종만 소개합니다.

    디칭 : 수영하는 처녀                 경포호수                      경포대해수욕장                                      경포대

    디 자 이 너 : 강춘환                           전희한                             전희한                                          신재용

    발   행   일 : 1967.  7. 11                 1974. 6.  1                        1974. 6.  1                                 2014. 5.  1

    사용 우체국 : 강릉 경포대 임출        강릉우 경포대분국                   강릉우체국                                경포대우체국

경포대 : 경포대(鏡浦臺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호)

  관동팔경의 하나로 1326년(충숙왕 13)에 관동존무사(關東存撫使) 박숙정(朴淑貞)이 현재의 방해정(放海亭) 북쪽에 세웠는데, 1508년(중종 3) 부사 한급(韓汲)이 현위치로 이건한 후 현재까지 7차에 걸쳐 중수했다. 평면은 앞면 5칸, 옆면 5칸이며 총 32개의 기둥을 두었고, 바닥은 우물마루로 짜여져 있으며 3단의 단차를 두어 사용자의 신분 및 계급에 따라 자리배치를 달리하던 평면에서의 위계(位階)를 보여준다. 또한 벽체의 구성없이 모두 난간을 가설하여 누대가 갖는 공간적인 개방성을 보여준다. 공포는 기둥머리에서부터 초익공이 나와 주두를 감싸면서 상부의 2제공을 받고 있는 이익공으로 그 상부에 재주두를 놓아 대들보를 받고 있다. 기둥 사이의 창방 위에는 앞면과 뒷면에 2구, 옆면에 1구씩의 복화반(覆花盤)을 놓아 구조적 의장재(意匠材)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가구는 종보·중종보·대들보로 이루어진 7량가로서 매우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다. 지붕의 형태는 부연이 가설된 겹처마의 팔작지붕으로서 양측면에 충량이 2개씩 나와 합각부의 무게를 대들보와 측면의 평주로 분산시켜 주고 있으며, 서까래가 보이는 연등천장이다. 내부에는 율곡(栗谷) 선생이 10세 때 지었다는 〈경포대부 鏡浦臺賦〉를 판각한 것과 숙종(肅宗)의 〈어제시 御製詩〉를 비롯하여 여러 명사들의 기문과 시판(詩板)이 걸려 있다. (다음백과)

                     

                            디 자 이 너 : 박은경                                                  디 자 이 너 : 박은경

                            발   행   일 : 2000. 6.  1                                      발   행   일 : 2011. 4.  1

                            사용우체국 : 영월우체국                                      사용우체국 : 영우얼우체국

영월 : 장릉전경(莊陵 사적 제196호)

  장릉(莊陵)은 조선 단종의 무덤이다. 단종은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여 상왕이 되고, 사육신의 복위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지금의 강원도 영월 청령원에 유배되었다가, 1457년 10월 24일 17세에 사약을 받고 숨을 거두었다. 사망할 당시 고을 사람들은 후환이 두려워서 시신을 거두지 못했고 시신은 그대로 강물에 떠다녔는데, 호장 엄홍도가 을지산 현 위치에 암장하였다. 이에 따라 장릉은 추존왕의 왕릉을 제외하고, 한양으로부터 100리 이내에 모셔야 한다는 《경국대전》의 규정을 따르지 않은 유일한 왕릉이 되었다. 조선왕조 최초로 폐위된 임금의 무덤이라 능 지위가 아닌 묘 지위를 받아서 노산군묘라 지어졌다. 그 후 59년이 지난 중종 11년(1516년) 여러 사람의 증언으로 묘를 찾아내 지키게 했으며, 12월 15일 처음으로 치제(致祭)가 이루어졌다. 그 후 선조 13년(1580년) 상석, 표석, 장명등, 망주석을 세웠으며, 숙종 24년(1698년)에 비로소 단종(端宗)이라는 묘호가 올려지고 신위가 종묘에 모셔지면서, 영월에 있던 무덤도 장릉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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