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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여행지 17. 세계유산 조선왕릉 (의릉. 정릉)

공룡우표매니아 2016. 1. 30. 04:00

찾아가는 여행지 17.

 세계유산 조선왕릉 (의릉. 정릉)

 

 

 

이문 : 의릉

   서울 성북구 석관동에 있는 조선 제20대 왕 경종과 그의 계비 선의왕후 어씨(宣懿王后 魚氏)의 능. 사적 204호. 경종은 숙종의 제1자로 희빈장씨(禧嬪張氏)의 소생이다. 숙종의 승하 후 경희궁에서 즉위하였으나 병약하여 재위 4년 만에 승하하였다. 선의왕후는 함원부원군(咸原府院君)어유구(魚有龜)의 딸로 15세 때 세자빈이 되었다가 경종의 즉위와 더불어 왕비로 진봉(進封)되었는데, 26세로 소생없이 승하하였다. 일반적으로 쌍릉은 좌우로 조성하나 이 능은 앞뒤로 비껴 능역을 조성하였다. 왕릉과 왕비릉이 각각 단릉(單陵)의 상설을 모두 갖추고, 뒤에 있는 왕릉에만 곡장(曲墻 : 굽은 담장)을 둘러 쌍릉임을 나타낸 배치이다. 이러한 전후능설제도(前後陵設制度)는 영릉(寧陵 : 효종과 인선왕후 장씨의 능)에서 처음 나타난 형식으로서 풍수지리적으로 생기왕성한 정혈(正穴)에 봉릉(奉陵)한 것이다. (다음 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서울정릉 : 정릉

   사적 208호인 정릉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후비 신덕왕후 강씨의 묘소이다. 태조는 고려의 풍습대로 향리와 서울에 각각 부인을 두고 있었는데, 강씨는 바로 서울에 있는 부인이었다. 고향에 둔 부인 한씨(韓氏)는 태조 등극 전에 죽었고, 등극과 더불어 왕후의 자리에 앉은 것은 현비(顯妃) 강씨로서 방번(芳蕃).방석(芳碩) 두 형제를 낳았다. 왕자의 난으로 이방원에 의해 현비(강씨) 소생의 두 왕자가 죽자 태조는 정사에 뜻을 잃고 태상당으로 있으면서 자주 정릉에 가서 불공에 정성을 기울였다. 그 후 능역의 광대함이 의정부에서 논란이 되었고, 태조가 죽은 뒤로는 정릉에 대한 박대가 노골화하였다가, 태종의 뜻대로 도성 밖 현재의 자리로 이장하였다. (다음 백과. 대한민국 구석구석)

서울정릉 : 정릉

  이성계는 강씨 사망 후 실의에 빠져서 직접 능 옆에 작은 암자를 짓고 행차를 아침저녁으로 바쳤으며 1397년 1년여의 공사 끝에 170여 간 규모의 홍천사를 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태종(이방원)은 신덕왕후를 후궁의 지위로 격하시키고 태조가 애지중지하던 정릉을 태조의 사망(1408년 음력 5월 24일)후에는 파괴하고 이전했다. 태종 9년 1409년 정릉은 서울 정동지역에서 도성 밖 양주, 현재의 서울시 성북구로 옮겨졌다. 태종은 더욱이 정동에 있던 정릉의 원래 자리의 정자각을 헐고, 봉분을 완전히 깎아 무덤의 흔적을 없애도록 명했으며, 1410년 광통교가 홍수에 무너지자 정릉의 병풍석을 광통교 복구에 사용하게 하여 온 백성이 이것을 밟고 지나가도록 했다. 다음 백과.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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