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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여행지 2. 충주 고구려비

공룡우표매니아 2015. 11. 21. 04:00

찾아가는 여행지 2.

충주 고구려비

 

 

중앙탑 : 충주 고구려비

  충주시 가금면 용전리 입석마을에 있는 고구려비, 국보 제205호. 총높이 203㎝, 비면높이 144㎝, 너비 55㎝. 1979년 4월 충주 문화재동호인의 모임인 예성동호회의 제보를 받은 단국대학교 학술조사단의 조사에 의해 학계에 보고되었다. 고구려 광개토왕릉비를 축소한 듯한 모양의 4면비(四面碑)이다. 화강암의 표면에 3~5㎝의 크기로 글자를 새겼고, 글자체는 예서(隸書)에 가까운 해서(楷書)이다. 마멸이 심해 앞면과 좌측 면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판독할 수 없으며, 그때문에 비 자체를 4면비가 아닌 3면비로 보는 견해도 있다. 비문의 내용은 단편적이지만 당시 신라와 고구려의 국제관계·영역문제를 비롯해 고구려인의 국제질서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고구려와 신라의 본격적인 대립이 5세기 중반 무렵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비의 건립연대는 5세기 전반이 더 유력해진다. 그러나 문자의 판독을 달리해 449년을 유력한 건립연도로 보는 견해도 있다.

중앙탑 : 충주 고구려비

  판독할 수 있는 글자가 비교적 많은 앞면의 경우 10행에 각 해당 글자수는 23자이다. 그리고 좌측 면은 7행에 각 행마다 23자가 새겨져 있다. 그러나 우측 면과 뒷면은 글자의 흔적을 확인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총글자수를 산정하기는 어렵다. 첫머리에 '고려대왕'(高麗大王)이라는 구절이 있고, 대형(大兄)·주부(主簿)·대사자(大使者) 등 고구려 관등이 자주 나와 이 비가 고구려에 의해 세워졌다는 증거가 된다. 당시 고구려는 신라를 아우(弟)와 같은 위치로 대하고 있었다. 비문에서는 고려 대왕과 신라 매금왕(寐錦王)이 형제처럼 위아래로 화합하여 '수천'(守天)하자는 구절이 있다. 수천은 천도(天道) 또는 천제(天帝)의 뜻을 지켜나간다는 의미이다. 또 고구려왕이 남하하여 신라왕을 부른 뒤 신라왕과 그 신하들에게 의복을 하사하고 있다. 이는 고구려가 신라에 대해 종주국으로 자처하고 있음을 뜻하며, 광개토왕릉비문에서 "백제와 신라는 옛부터 속민(屬民)이어서 늘 조공을 바쳐왔다"라는 구절도 하나의 증거가 된다.

(다음 백과, 브리태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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