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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장군과 군함

공룡우표매니아 2011. 5. 24. 06:01

이순신장군과 군함

 

 

 진해우체국의 관광통신일부인은 1993년 1월 4일부터 사용도었던 이순신장군과 군함(디자이너 전희한) 디자인을 변경(디자이너 김소정)하여 2011년 4월 1일부터 사용하고 있다.

                                                          진해 : 이순신장군과 군함.  변경전 (사용 말일)

이순신은 1545년 3월 8일(음력) 서울 건천동에서 태어났으나, 경제적 빈곤으로 인해 어려서 외가인 충남 아산으로 이사하여 그 곳에서 성장하였다. 28세가 되던 1572년 8월 처음으로 무관시험에 응시하였으나 낙마사고로 낙방하였고, 4년 뒤인 1576년 2월 비로소 식년무과에 합격하였다. 32세라는 뒤늦은 나이에 북방의 말단 수비장교로 시작된 이순신의 관직생활은 평탄하지 않았다. 그는 정치적 배경이나 경제적 능력이 없고, 성품이 강직하고 원칙을 중시하여 상관들로부터 잦은 모함과 미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순신이 정읍현감을 거쳐 1591년 2월 유성룡의 추천으로 드디어 전라좌도 수군절도사가 되었다. 전라좌수사에 부임한 이순신은 왜군의 침략을 예견하고 수군의 전력을 증강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먼저 군기를 확립하고 군비를 확충하였으며, 적에게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거북선과 판옥선, 지자와 현자총통 등의 무기를 제작하였다.  (이순신 : http://yisunsinkr.prkorea.com/)

                                                           디자인 변경후 (사용 초일)

임진왜란이 발발되기 바로 전해인 1591년(선조 24) 2월 13일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임명된 이순신은 왜구의 내침을 미리 염려하여 본영을 비롯한 수군의 각 진(鎭)에 대해 전쟁준비를 급속히 강화하는 한편, 특수전투함인 거북선의 건조에 착수하였다. 특히 조선기술(造船技術)에 뛰어난 막하의 군관 나대용(羅大用)의 도움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이순신은 임진년 6월 14일에 써올린 〈당포파왜병장 唐浦破倭兵狀〉에서 "신이 일찍부터 섬 오랑캐가 침노할 것을 염려하여 특별히 귀선을 만들었습니다[別制龜船]. 앞에 용두를 설치하여 아가리로 대포를 쏘게 하고, 등에는 쇠꼬챙이를 꽂았으며, 안에서는 밖을 내다볼 수 있으나 밖에서는 안을 엿볼 수 없게 해서, 비록 적선 수백 척이 있다 하더라도 그속으로 돌입하여 대포를 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다음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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