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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 기념우표

공룡우표매니아 2010. 3. 27. 05:38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 기념우표

 

 

(2010년 3월 26일 발행.)

 

                                                   태극기에 쓴 혈서.       안중근의사 손도장.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 ‘한 번에 이루지 못하면 두 번, 두 번에 이루지 못하면 세 번, 그렇게 네 번, 열 번에 이르고 일백 번을 꺾어도 굴함이 없이 ∼ 중략 ∼ 반드시 대한국의 독립권을 회복하고야 말리라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안중근의사가 옥중에서 쓴 자서전 중에서>

                          

                                               안중근의사 손도장.                                태극기에 쓴 혈서.

 

1879년 황해도 해주부에서 태어난 안중근은 개화론자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이 실력 양성을 통해 국권을 회복하고 문명개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뜻을 품고 학교를 설립하는 등 교육운동에 헌신하였다. 그러나 한국인에 대한 교육을 탄압하는 통감부 통치하에서는 실력양성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해외에 나가 의병을 조직하여 무력투쟁을 통한 국권회복을 꾀하게 된다. 1909년 3월, 안중근은 동지11인과 함께 왼손 무명지를 끊어 그 피로써 태극기에 ‘大韓獨立’을 쓰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자는 단지동맹을 맺었다. 그 해 10월, 한국의 자주독립권을 박탈한 이토 히로부미의 하얼빈 방문 소식을 듣고 안중근은 거사를 도모하게 된다. 그리고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은 하얼빈 역에 들어서는 이토 히로부미에게 총을 겨누었다. 역사적인 의거가 행해진 순간이었다.

 

체포 후 사형이 집행되는 마지막 날까지 그는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그의 죽음으로부터 100년이 지난 오늘, 안중근 의사는 그의 유묵에 남겨진 말처럼 자랑스러운 대한의 아들로 민족의 가슴 속에 살아있다. 안중근의사의 순국 100년을 기리며 안중근의사의 손도장과 태극기에 쓴 혈서를 담은 기념우표를 발행한다. 우표 속 무명지에는 안의사의 유언 내용이,태극기에는 감옥에서 작성한 한국인 안응칠(안의사의 아명) 소회’의 내용이 미세문자로 표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