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우표매니아

엄원용

공룡우표매니아 엄원용

관광인, 실체교류

관광인 여행.....1.203,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경주 독락당 계정.

공룡우표매니아 2025. 5. 27. 03:00

관  광  인   여  행........................1.203,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경주 독락당 계정.

경주 독락당 계정.

    독락당은 1964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조선 전기 문신 이언적(李彦迪)이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잠시 기거할 때 지은 별장 건물로 이언적을 봉사(奉祀)하고 있는 옥산서원(玉山書院) 건너편 계곡에 자리 잡고 있다. 이언적의 종가인 1964년 보물로 지정된 경주 양동 무첨당과 함께 유서깊은 건물로 손꼽힌다. 계정은 'ᆨ'자 평면으로 동쪽이 계정이고 북쪽은 창고와 방이 2개인데 서측방은 양진암(養,眞菴) 동측방은 인지헌(仁智軒)이다. 마당의 서쪽에는 어서각이 있고, 북쪽에는 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사당과 어서각은 각각 3칸이며, 사당은 남향, 어서각은 동향으로 마당을 중심으로배치되어 있다.

경주안강 : 경주 독락당 계정.

    독락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안채와 닿아 있고, 그 출입대문은 숨방채 대문에서 보면 정면 담장만 보이고 대문은 동-서 방향으로 나있어 잘 보이지 않는다. 독락당 담장과 공수간 담장사이에 난 약 1.5m의 통로를 통해 계곡으로 연결된다. 독락당과 안채의 벽면사이는 약 2m가량으로 1629년에 책방으로 만들어 사용하였다고 한다. 담장은 폭 0.6m, 높이 약 1.5m가량의 와편담장을 쌓았으며, 계곡에 면한 담장 사이에는 살창을 설치하였다.

    계정을 주축으로 하는 건물과 건축요소는 계정과 사당, 계정에서 출발하여 자계와 나란한 담장과 그 담장에 부가된 문과 외측간이 있다. 그리고 어서각은 성격상 왕의 친필을 보관하는 기념적인 건물로 그 앞의 담장은 계정마당의 배치 틀을 따르고 있고, 어서각 자체는 안채와 계정의 배치 틀 사이에서 완충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언적(李彦迪, 1491년 11월 25일 ~ 1553년 11월 23일)은 조선의 성리학자이자 정치가이다. 조선국 의정부 좌찬성 등을 지냈다. 본관은 여주(驪州)(혹은 여강(驪江)), 자(字)는 복고(復古), 호(號)는 회재(晦齋), 이다. 유학자로서 최고의 영예인 문묘 종사와 조선왕조 최고 정치가의 영예인 종묘 배향을 동시에 이룬 6현 중 한 명이다.(이들 6현은 이언적, 이황, 이이, 송시열, 박세채, 김집이다.) 1548년(명종 3) 6월 배소에서 모친상을 당하였다. 유배지에서도 그는 좌절하지 않고 많은 저술과 학문 연구에 매진하였다. 그는 하늘(天道·天心)과 백성 (人心)에 순응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수양(養心·敬心)에 힘쓸 것을 중요시하는 도학적 수양론을 경세의 근본으로 삼고 있다.

경주안강 : 경주 독락당 계정.

    그는 조선조 도학의 학문과 실천에 앞장섰으며 기묘사화로 화를 당한 사림파의 정치적 진출 확보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였다. 중용구경연의를 집필하던 중 1553년(명종 8년) 11월 30일 평안북도 강계군 배소에서 병으로 죽었다. 1556년(명종 21) 10월 퇴계 이황(退溪 李滉)이 그의 행장(行狀)을 지었다. 퇴계 이황은 말년에 자신의 저서와 학문 연구 외에도 이언적의 자료와 저술을 정리, 재간행하였다. 경전에 대한 원전 외에도 주해와 다양한 해석, 자신의 견해 등을 적은 책들을 읽고 퇴계 이황이 감동하였다 한다. 1567년 11월 왕이 유문을 수습하도록 명했고, 내탕금이 하사되어 국비로 그의 문집과 저서들이 간행되었다.

 

가실  아래 ♡ 공감  눌러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