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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인 여행..1.128,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 남해안대로, 오광대탈춤.

공룡우표매니아 2025. 1. 26. 03:00

관 광 인  여 행.......................1.128,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 남해안대로, 오광대탈춤.

오광대(五廣大)탈춤.

    고성군에 전승되어 온 탈놀이. 국가무형문화재 제7호이다. 오광대는 낙동강 서편에서 행해지던 탈춤을 가리키는데, 고성오광대는 창원오광대의 영향을 받아 지금과 같이 자리잡았다. 다른 지방 오광대에 비해 귀신을 쫒는 의식춤이 없고 극채색을 많이 쓰며 오락성이 강한 놀이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고성 : 오광대(五廣大)탈춤.

    탈춤의 발전 양상은 학계에서도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의 흐름으로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 흐름은 농촌탈춤으로 농촌 자체에서 오랫동안 이어온 행사이다. 농촌탈춤은 향촌 사회의 동제나 농악대굿 등에서 마을신을 즐겁게 하여 역병을 몰아내고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행해졌다. 대표적인 농촌탈춤은 안동시 하회 별신굿 탈놀이다.  백성들이 가진 양반에 대한 반감을 일정부분 해소시켜줌으로써 궁극적으로 향촌 사회의 안정을 꾀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두 번째 흐름은 떠돌이탈춤(본산대놀이)로 농촌탈춤에서 파생되었다. 조선 후기 경제의 발전으로 도시가 형성되면서 가난한 유랑민 무리들과 공연했던 놀이패들이 탈춤을 흥밋거리로 만들어 서울 근교의 여러 도시를 떠돌아다니며 상업적으로 행한 탈춤이다. 세 번째 흐름은 도시탈춤(별산대놀이)이다. 도시의 유지와 상인들은 이들을 초청하여 사람들이 많이 모이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떠돌이놀이패들이 약속을 어기는 일이 잦아지자 도시의 유지와 상인들은 자체적으로 놀이패들을 만들고 이들을 경제적으로 후원하게 되었고 이들을 별산대놀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도시에서는 농촌과 달리 양반에게 직접적으로 예속되지 않아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발달하였기 때문에 양반을 풍자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으며 대사의 분량과 내용이 풍부해졌다. 대표적인 도시 탈춤은 봉산탈춤, 양주 별산대놀이, 송파 산대놀이, 동래야류, 통영오광대 등이 있다. 6.25 전쟁, 산업화 등을 거치면서 상당부분 사라졌지만, 그래도 일부 사람들이 꾸준히 유지하면서 버티고 있으며, 상당수 대한민국의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보호받고 있으면서 전승되고 있다.

    고성 오광대가 인기가 있자 추석에도 논 적이 있었고, 일심계의 봄철놀이를 할 때도 밤내 자갈밭에서 놀기도 하였다. 무대는 특별한 장치가 없이 땅에서 그대로 연희하며, 악사는 놀이마당 가장자리에 앉고 관객은 그 주위를 원형으로 둘러싸고 구경한다. 조명은 놀이마당 가운데 두서너 곳에 장작불을 놓아서 밝힌다. 놀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마당은 ‘중춤’이다. 중과 각시가 굿거리장단에 맞추어서 춤을 춘다. 중이 각시를 유혹하고 각시는 마주보고 그에 응하는 요염한 춤을 춘다. 둘째마당은 ‘문둥이’로, 오그라진 손으로 소고(小鼓)를 들고 등장하여 벌벌 떨면서 문둥이의 흉내를 내며 춤을 춘다.

고성 : 오광대(五廣大)탈춤.

    셋째마당은 ‘오광대’로 양반이 위엄을 부리고 마부인 말뚝이에게 인사를 강요하지만 말뚝이는 반항한다. 양반을 바보스럽게 만든자. 넷째마당은 ‘비비’이다. 비비는 무엇이든지 잘 잡아먹는 상상의 동물로 영노라고도 한다. 양반을 혼내는 장이다. 다섯째마당은 ‘제밀주’이다. 본처인 할미가 등장하여 집을 나간 영감을 찾아다니고, 영감은 제밀주(혹은 제밀지)라는 첩을 데리고 나타난다. 제밀주가 득남하고 할미가 그 아이를 어르다가 떨어뜨려 죽여서 제밀주에게 맞아죽고 할미의 상여가 출상한다. 춤은  배역에 따라서 그 인물의 성격이 춤으로 표현되어 종류가 나눠진다. 즉, 말뚝이 춤은 동작이 크고 도약이 심하고 베김새가 힘찬 건무(健舞)이고, 양반춤은 유연한 춤사위를 보인다. 문둥이춤은 문둥이가 파리 잡아먹는 모습 등 그 생태를 익살스럽게 표현한다. 제밀주와 소무의 춤은 남성이 추지만 맵시를 부리는 여성무를 추고, 할미춤은 팔을 크게 벌리고 엉덩이를 심하게 흔들며 외설적인 동작으로 익살스럽게 춘다. 1930년경 일제의 금지로 중단되었다가 광복 후 재연하여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제7호)로 지정되었다. 1969년 사단법인 고성오광대연수회를 만들었고, 1973년 고성오광대 전수회관을 마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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