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 광 인 여 행................................ 830.
경기도 광명시 소화동, 이원익 선생과 관감당.
이원익은 1569년(선조 2) 별시문과에 합격하여 관직에 오른 후 1573년 성절사(聖節使)의 질정관(質正官)으로 중국에 다녀왔으며, 1575년 이후 정언(正言)·헌납(獻納)·사간(司諫) 등을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 때는 평안도 도순찰사로서 왕의 피난길을 선도하고 군사를 모아 적군과 싸웠으며, 1593년 평양탈환 때 공을 세우고 변무사(辨誣使)로 명에 다녀오는 등 큰 활약을 하여 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책훈되고 완평부원군(完平府院君)에 봉해졌다.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고 청백리에 피선되었으며 궤장(几杖)이 하사되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광명소하 : 이원익 선생과 관감당
이원익은 황희 맹사성과 함께 조선의 3대 청백리로 꼽혔을 만큼 청렴결백한 관리로 잘 알려져 있으며, 그의 청렴함이 드러난 일화는 '조선실록'에도 기록돼 있다. 인조 9년(1623년) 정월 10일, 임금이 승지 강홍중을 보내어 이원익을 문안한 뒤 "그가 사는 집이 어떠한가"라고 물었다. 강홍중은 "두 칸 초가가 겨우 무릎을 들일 수 있는데 낮고 좁아서 모양을 이루지 못하며 무너지고 허술하여 비바람을 가리지 못합니다"라고 아뢰었다. 이 말을 들은 임금은 "재상이 된 지 40년인데 두어 칸 초가는 비바람을 가리지 못하니, 청렴하고 결백하며 가난에 만족하는 것은 고금에 없는 것이다. (위키백과)
오리 이원익 종택 및 관감당(悟里 李元翼 宗宅 및 觀感堂)은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 있는 건축물이다. 1996년 12월 24일 경기도의 문화재자료 제90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선조(재위 1567∼1608), 인조(재위 1623∼1649)때 영의정을 지내고, 청백리로 이름 높던 오리 이원익 선생의 종가이다. 인조 8년(1630)에 2칸 초가인 선생의 집에 비가 새자 왕이 새 집을 하사하였다. 효종 9년(1658)에는 사당을 짓고, ‘충현서원’이란 현판을 받기도 하였으나 후에 서원은 철거되었다. 옛 집터에 1916년 사랑채인 관감당을 새로 짓고, 이듬해에는 안채를 들이고, 1940년에는 문간채를 새로 지었다고 한다. (위키백과)
광명소하 : 이원익 선생과 관감당
내가 평생에 존경하고 사모하는 것은 그 공로와 덕행뿐이 아니다. 이공(李公)의 청렴하고 간결함은 모든 관료가 스승삼아 본받을 바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5칸짜리 집 한 채를 이원익에게 하사했다. 하지만 이원익은 "신을 위해 집을 지으니, 이것도 백성의 원망을 받는 한 가지"라며 수차례에 걸쳐 받기를 사양했다. 관감당(경기도의 문화재자료 제90호)은 이원익이 은퇴한 후 인조가 사액과 함께 하사했으나 이원익이 네 차례에 걸쳐 받기를 사양했다는 5칸짜리 집이다. 계속된 사양에 인조가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은 신민이 보고 느끼도록 하려는 것이니, 경은 굳이 사양하지 말고 거기에 살라"라고 하자 이원익이 더 이상 사양할 수 없어서 들어가 살았다고 한다.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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