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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인 여행.....702.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貞陵)

공룡우표매니아 2023. 1. 3. 03:00

관광인 여행.................... 702.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貞陵)

 

서울정릉 : 정릉(貞陵)

    사적 제208호. 서울시 성북구 정릉동에 있는 정릉은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강 씨(?~1396)의 능으로 29만 9,573제곱미터다. 태조 이성계는 고려 시대 풍습에 따라 향처(고향의 부인), 경처(개경의 부인)를 두었는데 강 씨는 경처로 황해도 곡산부 상산부원군 강윤성의 딸이다. 이성계는 원 동녕부를 원정해 공을 세우고 남해 일대 왜구를 수차례 토벌하면서 고려 중앙인 개성에 진출했다. 하지만 지방 토호라는 출신 때문에 한계를 느꼈고 개성의 권문세족 출신인 강 씨와 정략적으로 혼인한 것이었다. 남다른 사랑을 주던 신덕왕후가 갑자기 사망하자 태조는 도성 안에 왕릉 터를 정하는 것은 물론 강 씨 봉분 우측에 자신의 봉분인 수릉을 정하고 능호를 정릉으로 정했다. 오늘날은 정릉이 있던 곳이라 정동이라 부른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동에 있다. 1396년(태조 5) 신덕왕후 강씨가 죽자 태조는 능역을 황화방 북원에 정하고 그 동쪽에 재궁 흥천사를 세워 자주 행차했다. 그러나 태조가 죽은 뒤인 1409년(태종 9) 묘를 사을한 골짜기로 옮겼으며 종묘에 부묘하지 않고 왕비의 제례를 폐했다. 1410년 태종은 정릉의 석물 중 일부인 병풍석을 광교의 돌다리로 사용했으며, 그밖의 석재나 목재들을 태평관 건립시 부속재로 이용했다. 1581년(선조 14) 삼사에서 신덕왕후 강씨의 시호와 존호를 복귀하고, 정릉을 회복하자는 논의가 있은 뒤, 1669년(현종 10) 송시열(宋時烈) 등이 다시 신덕왕후 강씨를 종묘에 배향해야 한다는 차자를 올림으로써 비로소 본격적인 복구작업과 이에 따른 수호군 및 모든 상설을 구비하게 되었다. (다음백과)

서울정릉 : 정릉(貞陵)

    신덕왕후의 능을 이방원이 푸대접한 이유는 그녀와의 알력 때문이다. 고려 말 권문세가였던 신덕왕후 강 씨의 가문은 이성계에게 정치 무대의 중앙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었고, 신덕왕후는 슬기롭고 사리가 밝은 여인이었다. 태조에게 신덕왕후는 충실한 내조자를 넘어 정치적 동지였던 셈이다. 문제는 강 씨가 실질적인 개국 공신인 데다 여세를 몰아 자신의 아들인 방석을 왕세자로 책봉해 태조의 뒤를 잇도록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녀의 이런 조치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도전, 남은 등이 그녀의 편이었고 무엇보다도 태조 역시 자신의 뜻을 따랐다. 그러나 그녀는 아들의 왕위 계승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졸지에 계모의 아들인 방석에게 세자 자리를 빼앗긴 이방원은 제1차 왕자의 난 때 신덕왕후의 아들인 방번과 방석을 죽이고, 동복형인 방간이 자신을 치려고 하자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결국 왕위에 오른다. 그리고 곧바로 신덕왕후를 깎아내리는 작업에 착수했다. 종묘에 신위를 모실 때 태조와 자신의 친어머니 신의왕후를 함께 모시고, 신덕왕후를 후궁의 지위로 격하해 신위를 모시지 않았다. (과학문화유산답사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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