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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재 및 상징 엽

경인 문화재 여행 .........63. 군포시 군포 둔대교회

공룡우표매니아 2022. 5. 11. 03:00

경인 문화재 여행 .......................63. 

군포시  군포 둔대교회

 

   군포시 둔대동에 있는 ‘군포 둔대교회’는 일제강점기인 1936년 건립됐으며, 53㎡ 규모의 작은 한옥에 종교 기능을 부여한 건물이다. 한옥과 서양의 건축 특성을 혼합한 절충형 근대한옥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 지역사회 농촌 계몽운동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됐다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군포 둔대교회

   둔대교회는 한국 교회 건축사뿐만 아니라 군포 근대 역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예배당 외벽에 걸린 현수막 내용대로 농촌계몽운동의 산실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대한감리회에서 발행한 ‘둔대교회 역사’ 자료에 따르면, 둔대교회는 1902년 군포 지역 일대에서 가장 부자였던 박영식 씨의 집 사랑채(현재 교회 아래 자리하고 있는 향토 유적 1호 ‘박씨 고택’)에서 시작됐다. 박 씨는 당시 5세였던 어린 손주 용덕 씨에게 신교육을 시키려고 배재학당 출신 황삼봉 선생을 독선생(가정교사)으로 초빙했다. 그런데 황 선생은 단순히 독선생에 머물지 않고 계몽운동을 활발하게 병행해 용덕 씨뿐 아니라 주민들까지 모아 예배와 교육을 실시했다. 이를 본 박 씨는 1903년 봄 둔대동 354번지에 작은 토담(초가로된 흙집 교회)을 짓고 거기서 예배를 보도록 했다. 이후 1910년 12월 박 씨는 자신의 집 뒷산 기슭인 둔대동 434번지를 기증하고 1936년 교회를 신축했다. 그 자리가 바로 현재 남아 있는 둔대교회 예배당 자리다.

군포 둔대교회

   경술국치 이후 교회는 몇 차례 곤욕을 치렀다. 군포 지역 3·1운동 중심지라는 이유로 탄압을 받았기 때문이다. 고령의 교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3·1운동 당시 일본 순사들이 교회 문에 못질을 해서 폐쇄시키고, 종소리에 주민들이 몰려와 만세운동을 벌이지 못하도록 종탑의 종도 떼어갔다. 나뭇단을 가져와 불을 지르기도 했다. 다행히 불이 타다 말아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박 씨의 후원과 황 선생에 의해 시작된 둔대교회 교육 활동은 일제 강점기로 접어들면서 야학으로 정착됐다. 1935년 감리회보에 따르면 당시 교회 야학 학생이 50명, 신통자 2명, 교사 3명이었고, 교장은 박인기 장로(박용덕 씨 동생)였다. 이후 6·25전쟁 때는 인근 반월국민학교가 불타버려 소실되자 임시교사 구실을 하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6·25 직후 반월저수지가 조성될 때는 마을이 수몰되는 것도 지켜봤다. 둔대교회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고 이후 수많은 사건 사고들을 묵묵히 바라보며 118년 동안 한자리에 서 있었다. 대한민국의 역사와 굴곡을 같이 한 의미있는 장소인 것이다. (경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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