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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인 여행.......106. 경북 문경시의 박열의사 생가

공룡우표매니아 2019. 5. 13. 04:00

관광인 여행....... 106. 

경북 문경시의 박열의사 생가



문경마성 : 박열의사 생가

  "지구를 깨끗이 청소하는 일 가운데 첫걸음이 일본 제국을 쓸어버리는 일입니다." 의사 박열(1902~1974)의 기개다. 박열은 1902년 문경에서 태어나 탄광촌에서 일본인에게 착취당하는 조선인들의 참상을 보고 자랐다. 그는 함창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5세에 서울로 올라가 경성고등보통학교 사범학과에서 수학했다. 경성고보 재학 중에 3'1운동 만세 시위에 가담한 혐의로 퇴학을 당하고 1919년 일본 도쿄로 건너가 세이소쿠가쿠엔고등학교에서 수학한다. 1920년 일본에서 조선 청년들과 함께 의혈단, 흑우회를 조직하는 등 사회주의 노동운동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펼쳤다. 1922년 2월 자신의 시를 보고 공감한 '운명의 여인' 가네코 후미코(1903~1926)를 만나 결혼, 평생 동지가 된다. 박열 의사는 부인 가네코와 함께 일본 왕세자 결혼식에서 일왕 부자 암살을 기도해 일본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일왕과 왕세자 암살은 실패로 끝났고, 이후 대역죄 혐의로 구속돼 4차례에 걸친 공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향후 무기로 감형됐다.

디자인 명칭 : 박열의사 생가    디자이너 : 박은경    사용 개시일 : 2018. 9.  20     사용 우체국  : 문경마성우체국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박열의 기개는 결코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 법정에서 수의가 아니라 조선관복을 입는 것을 관철할 정도였다. 이는 그의 기개가 만천하에 알려진 계기가 됐다. 공판이 열리기 전 박열은 면회를 갔던 조선 학우회의 조헌영(시인 조지훈의 아버지)에게 자신과 부인에게 한복을 입고 재판받게 해달라고 부탁해 한복을 차려입었다. 박열은 혼례복에 사모를 쓰고 관대를 둘렀으며 태극선까지 들었다. 가네코는 흰 옥양목 저고리에 검은 공릉치마 차림을 하고 법정에 섰다. 법정에서 박열은 "일본 왕을 대표하는 재판관이라면 나는 한국 민족을 대표하기에 한복을 요구하는 것이며 재판관석과 피고석의 높이를 동등하게 하고 나는 한국말을 사용할 테니 통역을 딸려라"고 해 재판관이 주눅이 들 만큼 기개가 당당했다고 한다.

문경마성 : 박열의사 생가

  박열 의사는 무려 22년 2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1945년 해방 이후 풀려나 백범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이봉창 의사 유해봉안 추진위원장을 비롯해 제일거류민단장, 신조선건설동맹위원장을 맡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이후 6'25전쟁이 일어나자 3일 만에 강제 납북돼 1974년 북한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유해는 평양 애국열사릉에 묻혔다.(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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