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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재 및 상징 엽

경기문화재 여행 9. 천주교 답동성당(仁川畓洞聖堂)

공룡우표매니아 2019. 4. 8. 04:00

경기문화재 여행 9.

천주교 답동성당 (仁川畓洞聖堂)사적 제287호



천주교 답동성당 (仁川畓洞聖堂)

  인천 중구 답동에 소재한 답동 성바오로성당은 1981년 9월 25일 사적 제287호로 지정되었다. 구한말 1897년에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의 코스트 신부의 설계로 처음 건립되었고 1937년에 시잘레 신부의 설계로 증축된 991.74m²(300평) 규모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벽돌조 건물이며 한국의 성당 중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근대 건축물 중 하나이다. 전면에 3개 종탑을 가지고 있고 각 종탑마다 8개의 작은 돌기둥이 8각의 종 머리 돔을 떠받들고 있으며 각각의 종탑 아래에는 나무로 된 낡은 출입문이 있다. 벽면을 넓게 둘러싸고 있는 붉은 벽돌과 흰 화강암으로 된 계단이 장엄한 조화를 이루고 있고 긴 아치형으로 된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어 있는 성당의 창문이 웅장하고 아름답다. 성당 뒤쪽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담쟁이덩굴로 덮혀있는 낡은 담장이 오랜 역사를 증명하는 듯 정감이 있다. 서울로 들어오는 관문이자 외국 무역의 거점이 될 수 있는 좋은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는 제물포에 건립된 이후 답동성당의 아름다운 자태와 위용으로 인천의 역사적인 건축물이자 종교 유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대한민국구석구석)

천주교 답동성당 (仁川畓洞聖堂)

   1889년(고종 26) 답동본당이 설립되자 빌렘(Wilhelm, J.)신부가 부임하여 지금의 성당자리에 부지 3, 212평을 마련하여 성당을 건축하기 위한 정초식을 가졌다. 1891년 르비엘(Leviel)신부가 부임하여 1893년에 임시성당을 건립하였으며, 3대 신부 마라발(Maraval)이 건평 396평의 본격적인 고딕양식의 연와조 성당건물을 1899년에 완공시켰다. 그 뒤 5대 신부 드뇌(Deneux, E.)가 1933년 본당의 개축공사에 착수하여 1937년 6월말에 완성함으로써 연건평 307. 2평의 현재 성당이 준공되었다. 두 차례의 내부공사가 있었지만 비교적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오늘에 이른다. 평면은 라틴십자형 삼랑식(三廊式)이고, 건축양식은 로마네스크양식으로 전주의 전동성당과 흡사한 외관이다. 적벽돌이 주재료이나 화강 석재를 의장적(意匠的)으로 중요한 곳에 사용한 점이 특이하다. 정면 중앙과 양측에 반원 아치로 된 출입구가 나 있고, 그 위에는 반원 아치의 창이 있는데 창 둘레와 출입구는 화강석재로 처리하였다. 중앙종탑과 좌우의 작은 종각 꼭대기에 구성된 8각고상부첨탑(八角鼓狀部尖塔)은 처마 밑 돌림띠의 석재장식과 함께 정면외관을 웅장하고 화려하게 한다. 이 성당은 1961년 7월 인천교구가 서울대교구로부터 분리, 설정됨으로써 메리놀(Maryknoll)회 소속인 맥노턴(McNaughton)주교가 인천교구장으로 부임, 1962년 교계제도(敎階制度)의 설정과 함께 대목구(代牧區)에서 주교구로 승격되어 주교좌성당이 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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