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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정명 1260년 역사문화우표전시회

공룡우표매니아 2017. 12. 17. 04:00

김포정명  1260년 역사문화우표전시회


기  간 : 2017년 11월 28일 ~ 30일(3일간)    장  소 : 김포시민회관 전시실    주  최 : 한벗우취회

협  찬 : 창의도깨비미술원   후  원 : 김포문화원,  김포신문.  사) 우리문화선양회.  사) 한국우취연합

인물은 : 중봉 조  헌

  올해는  ‘김포(金浦)’라는 지명이 정해진지 1260년이 되는 해이다. 고구려 장수왕 63년(475) 고구려가 한강하구 지역을 차지하면서 김포일대 역사가 기록에 등장하기 시작하고 통일신라 경덕왕 16년(757) 행정구역 개편으로 ‘김포(金浦)’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김포는 한반도 역사의 중심지로 각 시대의 우수한 역사․문화․전통을 품고 있는 지리적․전략적 요충지이다. 오랜 세월만큼 수많은 풍파를 견디며 꿋꿋이 자리를 지켜왔고 무한한 발전으로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오늘은 미래의 또 다른 역사이다. ‘김포 정명(定名) 1,260년’을 맞이하여 김포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자긍심을 갖는 한편 정명 1,300년, 1,400을 향한 미래 비전을 계획하고 준비해야 한다. 이에 김포시는 ‘김포 정명(定名) 1,260년’을 주제로 시민과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 축제, 학술 연구회, 전시회 등을 준비해 왔다. 2017년, 내가 살고 있는 김포를 조금 더 사랑하고 관심 갖는 한 해로 삼아보는 건 어떨까? 김포가 이루어나갈 역사에 모든 시민이 함께 하길 바라본다. (김포 시정소식)

중봉. 조  헌(趙憲) 1544~1592 출생 김포

  임진왜란 당시 금산에서 700명의 의병을 이끌고 끝까지 분전했으나 중과부적으로 모두 전사했다. 정치적으로는 기호학파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평생을 직언으로 일관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5월에 격문을 띄우고 의병을 모아 차령에서 왜군을 물리쳤다. 그후 다시 의병을 모아, 8월 1일 영규의 승군과 같이 청주성을 수복했다. 왜적이 충청도와 전라도를 빼앗으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금산으로 향했으나, 충청도순찰사 윤국형과의 의견대립과 전공을 시기하는 관군의 방해로 의병이 흩어지고 700여 명만이 남게 되었다. 이들을 이끌고 금산으로 가서 8월 18일 왜장 고바야가와의 군대와 전투를 벌였으나, 인원과 무기의 열세로 모두 전사했다. 고경명(高敬命)·김천일(金千鎰)·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임진4충신으로 불린다. 1734년(영조 10) 영의정에 추증되고, 1883년(고종 20) 문묘에 배향되었다. 김포 우저서원(牛渚書院),등에 제향되었다. (다음백과사전)

                         중봉. 조  헌                                                      우저서원

  우저서원 : 1648년(인조 26)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선조 초기에 통진현감(通津縣監)으로 있으면서 유생을 훈도한 조헌(趙憲)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69년경 김포유생이 청액소(請額疏)를 올려 사액을 청하였지만 한창 첩설(疊設)에 따른 폐단이 논의되던 때라 실현을 보지 못하였으며, 1675년(숙종 1) 남인정권하에서 충절장려책의 일환으로 현판을 하게 되어 ‘우저(牛渚)’라고 사액되었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왔으며, 1868년(고종 5)경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시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중의 하나이다. 1973년에 보수하고 단장을 신축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사우(祠宇),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된 강당과 비각(碑閣)·내삼문(內三門)·외삼문(外三門) 등이 있다. 사우에는 조헌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매년 봄과 가을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호(1972.05.04 지정) (대한민국 구석구석)

  금년은 김포시기 생긴지가 1260년이 되는 해이다. 고구려 장수왕 시절 검포현으로 불리우다가 통일신라 757년 경덕왕 때에 김포현으로 불리운 것이 지금껏 바뀌지 않고 그대로 김포란 지명을 안고 1260년을 살아온 것이다. 이를 기념하고자 지난해부터 역사문화우표전시회를 김포시청, 김포문화원과 꾸준히 노력하여왔으나 우여곡절 끝에 한벗우취회의 주최로 개최하게 되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씀과 윤봉길 의사의 丈夫出家生不還 (장부가 뜻을 품고 집을 나서면 그 뜻을 이룰 때까지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비장한 글을 가슴 깊이 새기오며.....(남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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