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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 인물(소설가) 기념우표 초일커버

공룡우표매니아 2017. 7. 2. 04:00

현대 한국 인물(소설가) 기념우표 초일커버


발행일 : 2017년 6월 27일.    우표번호 : 3210 ~ 3211.    디자인 : 김동리. 박경리.   용지 : 평판 원지

인쇄및 색수 : 평판 4도 은분, 흑박   디자이너 : 박소정.    인쇄처 : Cartor(한국우편사업진흥원)


우정사업본부는 한국의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김동리와 박경리를 선정하여 기념우표를 발행합니다.

김동리

  김동리(1913~1995)는 해방 이후 한국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토착적이고 민족적인 소재를 소설화해 가장 한국적인 작가로 평가받습니다. 1934년 시 `백로(白鷺)`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하며 등단한 이후, 1935년 "중앙일보"에 `화랑의 후예`가, 1936년 "동아일보"에 `산화(山火)`가 당선되며 소설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으며, 순수 문학과 신인간주의 문학을 지향했습니다. 한국 고유의 토속성과 외래 사상의 대립을 통해 샤머니즘과 인간성 문제를 작품에 구현하고, `역마`(1948) · `등신불`(1961) · `까치소리`(1966) 등의 단편 소설, "무녀도"(1947) · "등신불"(1963) · "바위"(1973) 등의 단편집을 비롯한 수많은 작품집을 남겼습니다. 아세아 자유 문학상, 예술원 문학 부문 작품상, 3.1 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국민훈장 동백장과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습니다.

박경리

  박경리(1926~2008)는 한국 대하소설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인 "토지(土地)"를 썼습니다. 1955년 "현대문학"에 단편소설 `계산(計算)`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장했으며, 1957년 `전도(剪刀)`, `불신시대(不信時代)` 등의 단편과 1959년 장편 "표류도"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1962년 장편 "김약국의 딸들"을 비롯하여 "시장과 전장"(1964), "파시(波市)"(1965)등 전쟁의 아픔과 시대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작품을 써 문단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특히 1969년부터 1994년까지 26년간 5부로 완성한 대하소설 "토지(土地)"는 한국 근 · 현대사의 굴곡 속에서 다양한 계층이 겪는 고난과 운명을 보여줌으로써 민족의 한과 역사를 깊이 있게 다룬 한국 문학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현대 문학 신인상(1957), 한국 여류 문학상(1965), 월탄 문학상(1972),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기념 메달(1996) 등을 수상했고, 20세기를 빛낸 예술인(문학)에 선정되었으며(1999), 금관 문화 훈장(2008)이 추서되었습니다.

  소설가. 시인. 1930년대 중반 시 ‘백로’와 소설 ‘화랑의 후예’로 등단하였다. 광복 전에는 토속적인 것에 바탕을 두고 신비적 · 허무적인 경향을 띠는 작품을 썼으며, 광복 후에는 인간성을 옹호하는 작품을 주로 창작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황토기’, ‘사반의 십자가’, ‘을화’ 등이 있다. 화랑의 후예는 단편 소설. 일제 강점기,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가문이라는 낡은 관념에 사로 잡힌 황 진사의 정신적 오만과 허위성을 비판한 작품이다. 작품 역마는, 토속적이고 향토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하여 인간의 사랑과 운명에 대한 문제를 밀도 있게 그림으로써 인간의 운명과 생(生)의 본질적 탐구에 주력하고 있다.

  주로 인간의 내면세계를 깊이있게 그려낸 문제작만을 발표했던 박경리는, 1945년 진주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 결혼했으나, 6·25전쟁 때 남편이 납북된 후 딸과 함께 생활했다. 시인 김지하는 그녀의 사위이다. 1970년대 후반에 강원도 원주시로 거처를 옮기고 창작활동에 전념하여 1994년 8월 대표작 대하소설〈토지〉를 완결지었다. 1955년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단편〈계산 計算〉과 1956년 단편 〈흑흑백백 黑黑白白〉이〈현대문학〉에 발표되어 문단에 나왔다. 이어〈현대문학〉에 단편 〈군식구>〈전도 剪刀>〈불신시대〉〈영주와 고양이>〈반딧불〉〈벽지 僻地〉〈암흑시대〉등의 문제작을 계속 발표했다. 1950년대 중반까지는 주로 단편을 쓰다가 1959년 〈표류도〉(현대문학, 1959. 2~10)를 발표한 뒤로는 주로 장편을 썼으며, 1963년 단편 14편을 모아 소설집 〈불신시대〉를 펴내면서 작가로서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다음백과사전)

  김동리의 본관은 선산(善山). 호적명이 김창귀(金昌貴), 족보명은 김태창(金太昌), 아명(兒名)은 창봉(昌鳳). 자는 시종(始鍾), 호는 동리(東里). 경상북도 경주 출생. 조선 초기의 문신 김종직(金宗直)의 17대 손으로 아버지는 김임수(金壬守)이다. 동리에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인 큰형은 동양철학자 범부(凡父) 김기봉(金基鳳)이며, ‘동리’라는 호는 그가 지어준 것이다. 5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동리는 어머니가 기독교인이었던 관계로, 기독교 계통의 학교에서만 수학하였다. 경주 제일교회 소속의 계남소학교와 대구의 계성중학교 및 서울로 편입한 경신중학교 모두 기독교 계통의 학교이다. 하지만 그의 학창 생활은 17세 되던 1929년 경신중학교를 중퇴하고 낙향하는 것으로 종료된다. (다음 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나의 출생은 불합리했다. 이 허무한 세상에 왜 내가 태어났으랴 하는 따위의 뜻은 물론 아니다. 그것은 부모들의 관계에서 온 나의 견해였다. 아버지는 죽는 날까지 어머니에 대하여 타인이라기보다 오히려 적의에 찬 감정으로 시종 일관했다. 어찌하여 사랑하지도 않고 그렇게 미워한 여인에게 나를 낳게 했는가 싶다. 어머니는 말하기를 산신에게 빌어 꿈에 흰 용을 보고 너를 낳았으니 비록 여자일망정 너는 큰 사람이 될 것이라고, 나는 그 이야기를 시시하게 들었을 뿐만 아니라 산신에게 증오하고 학대하던 남자의 자식을 낳게 해줍시사고 애원을 한 어머니를 경멸했었다. 그것은 사랑의 강요였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그러한 모습은 내게다가 결코 남성 앞에 무릎을 끓지 않으리라는 굳은 신념을 못박아 주고야 말았다. 그 신념은 무릇 강한 힘에 대한 반항이 되었고 그러한 반항 정신이 문학을 하게 한 중요한 소지가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인생에 있어서 나를 고립시키고 말았다. 나는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경멸, 아버지에 대한 증오, 그런 극단적인 감정 속에서 고독을 만들었고 책과 더불어 공상의 세계를 쌓았다. (다음 백과. 20세기 한국문학의 탐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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