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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 출간 70주년기념 엽서 발행

공룡우표매니아 2017. 3. 9. 04:00

백범일지 출간 70주년기념 엽서 발행


  이 『백범일지』는 1947년 12월 15일 국사원에서 처음 김구의 아들 김신에 의해 초간발행을 필두로 오늘날까지 국내외에서 10여본이 출판사를 통해 중간되었다. 더우기 김구가 상해이후 중경까지 27년간 임시정부요직을 두루 지내며 틈틈이 써놓은 친필원본이란 것과 임시정부의 1차 사료인 동시에 독립운동사 연구 및 위인전기사료로 귀중한 자료이다.

백범일지 출간 70주년기념 엽서 (2017년 3월 2일 발행)

  백범일지 이 책은 독립운동가이며, 정치가인 백범 김구(金九,1876∼1949) 선생이 직접 쓴 자서전으로, 보물 제124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상, 하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편은 1929년 김구가 53세 되던 해에 상해임시정부에서 1년 정도 독립운동을 회고하며 국한문혼용체로 김인, 김신 두 아들에게 쓴 편지형식으로, 「우리집과 내 어릴 적」,「기구한 젊은 때」,「방랑의 길」,「민족에 내놓은 몸」등의 순서로 기록하고 있다. 하편은 김구가 주도한 1932년 한인애국단의 두 차례에 걸친 항일거사로 인해 상해를 떠나 중경으로 옮겨가며 쓴 것으로,「3·1운동의 상해」,「기적 장강 만리풍」등의 제목아래 민족해방을 맞게 되기까지 투쟁 역정을 기록하고 있다. 임시정부 환국이나 삼남 순회 대목의 서술은 1945년말 정도에 첨부하여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상·하편 뒤에 붙은「나의 소원」은 완전독립의 통일국가건설을 지향하는 김구의 민족이념정신이 잘 나타나 있다. (다음 백과. 위키백과사전)

  김구는 17살 때 조선왕조 최후의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동학에 입문하여 19세에 팔봉접주가 되어 동학군의 선봉장으로 해주성을 공격했다. 21살 때는 국모의 원한을 갚는 거사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으나 탈옥하여 공주 마곡사에 입산, 승려가 되기도 하였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후 독립운동에 몸을 던졌으며, 안중근과 안명근 의사의 의거에 관여하였다. 1919년 3·1운동 직후 상해로 망명,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초대 경무국장과 내무총장을 거쳐 1926년 국무령에 취임하였다. 1939년에는 임시정부 주석에 취임하였고, 이듬해 한국광복군을 조직하여 항일무장부대를 편성, 1941년 대일선전포고를 하였다. (다음 백과. 위키백과사전)

  인, 신 두 어린 아들에게

  아비는 이제 너희가 있는 고향에서 수륙 오천 리나 떨어진 먼 나라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어린 너희를 앞에 놓고 말하여 들려 줄 수 없으매 그 동안 나의 지난 일을 대략 기록하여서 몇몇 동지에게 남겨 장래 너희가 자라서 아비의 경력을 알고 싶어할 때가 되거든 너희에게 보여 주라고 부탁하였거니와, 너희가 아직 나이 어리기 때문에 직접 말하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지만 어디 세상사가 뜻과 같이 되느냐. 내가 내 경력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기는 것은 결코 너희에게 나를 본받으라는 뜻은 아니다.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바는 너희도 대한민국의 한 국민이니 동서와 고금의 허다한 위인 중에서 가장 숭배할 만한 이를 택하여 스승으로 섬기라는 것이다. 너희가 자라더라도 아비의 경력이 알 길이 없겠기로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이다. 다만 유감되는 것은 이 책에 적는 것이 모두 오랜 일이므로 잊어버린 것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하나도 보태거나 지어 넣은 것이 없는 것도 사실이니 믿어주기를 바란다. 대한민국 11년 5월 3일 중국 상해에서 아비. (위키문헌 백범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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