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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우표매니아 엄원용

우표전시 기념인 교류

우표와 관광인 모임 카페 창립 10주년 기념우표전시회

공룡우표매니아 2015. 12. 13. 04:00

                   2015 우표박물관 기획전시회

우표와 관광인 모임 카페 창립 10주년 기념우표전시회

 

 

일 시 : 2015년 11월 26일 ~ 12월 2일(7일간)   장 소 : 우표박물관    주 최 : 서울지방우정청   

관 : 한국우편사업진흥원     후 원 : 한국우취연합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백야 김좌진 장군(1889`1930)

  홍성의 부유한 농가에서 태어난 장군은 개화사상이 투철하여 15세 때 집안의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논밭을 나누어 주었다. 또한 1905년 호명학교를 설립하여 문맹퇴치에 앞장섰으며, 1913년에는 군자금을 모금하다 3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1917년 만주로 건너가 대한광복단에 가입한 이후 북로군정서의 사령관이 되어 독립군을 훈련시켰으며, 이를 기반으로 청산리에서 일본과 전투를 벌여 독립운동사상 최대의 승리를 이루었다. 조국광복을 위해 노력했던 장군은 1930년 공산주의자 박상실에 의해 암살 당했다.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백야 김좌진 장군(1889`1930)

  암살 직후 만주땅에 묻혔다가 아내 오숙근 여사가 1940년 장군의 유해를 밀감상자로 위장해 비밀리에 홍성군 서부면 이호리에 안장하였다. 그 후 1957년 부인이 타계하자 아들 김두한이 현 위치에 합장하였다. 현재 묘역에는 뒤편으로 담장이 설치되어 있으며, 봉분은 아랫부분에 둘레석을 둘렀다. 봉분 앞에는 상석과 장명등(長明燈: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든 등)이, 옆에는 묘비가 있으며, 좌우에는 마(馬)석상 한 쌍이 세워져 있다. (다음 백과. 대한민국 구석구석)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백야 김좌진 장군(1889`1930)과 청산리항일대첩기념탑

  청산리대첩은, 1920년 10월 김좌진(金佐鎭)·나중소(羅仲昭)·이범석(李範奭)이 지휘하는 북로군정서군(北路軍政署軍)과 홍범도(洪範圖)가 이끄는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 등을 주력으로 한 독립군부대가 독립군 토벌을 위해 간도에 출병한 일본군을 청산리 일대에서 10여 회의 전투 끝에 대파한 전투이다. 청산리대첩은 독립군이 일본군의 간도 출병 후 그들과 대결한 전투 중 가장 큰 규모였으며, 독립군이 최대의 전과를 거둔 가장 빛나는 승리였다. 이 전투에 참가한 주력부대의 하나인 북로군정서군의 병력은 그 해에 사관연성소를 졸업한 298명을 포함해 약 1,600명이었고, 무기는 소총 1,300정, 권총 150정, 기관총 7문을 갖추고 있었다. (다음 백과. 한국 민족분화 대백과)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백야 김좌진 장군(1889`1930)과 청산리항일대첩기념탑

  청산리 전투에 참가한 간부는 총사령관 김좌진, 참모부장 나중소, 부관 박영희(朴寧熙), 연성대장 이범석, 종군장교 이민화(李敏華)·김훈(金勳)·백종렬(白鍾烈)·한건원(韓建源), 대대장서리 제2중대장 홍충희(洪忠憙), 제1중대장서리 강화린(姜華麟), 제3중대장 김찬수(金燦洙), 제4중대장 오상세(吳祥世), 대대부관 김옥현(金玉玄) 등이었다. 또 하나의 주력부대인 홍범도부대는 대한독립군·국민회군·의군부·한민회(韓民會)·광복단·의민단·신민단 등이 홍범도의 지휘 아래에 연합한 부대였으며, 그 병력은 약 1,400명이나 되었다. (다음 백과. 한국 민족분화 대백과)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백야 김좌진 장군(1889`1930)과 청산리항일대첩기념탑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만들었던 청산리대첩을 기리기 위해 2001년 8월 31일 청산리항일대첩기념비 수건위원회가 국가보훈처의 지원을 받아 건립하였다. 중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 건립된 이 기념비의 앞면에는 일본군을 격파하는 한국독립군의 용감한 모습이 화강암 부조로 장식되었으며, 뒷면에는 건립 취지문과 경위를 밝힌 글이 석판에 새겨져 있다. 백두산으로 가는 관광객들이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청산리 전투 현장의 초입 지역인 화룡현 청산촌에 기념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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