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우표매니아

엄원용

공룡우표매니아 엄원용

이산 저산 앞산에서

이산 저산 앞산에서...... 47. (봉미산 856m. 백족산 402m)

공룡우표매니아 2015. 7. 30. 04:00

이산 저산 앞산에서...... 47.

(봉미산 856m.  백족산 402m. 설성산 290m)

 

리본찍어 보내주신 분들 공룡우표첩 받으셨음 잘 받았다고 연락주시면 얼마나 고마울까요, 잘 도착했는지 궁굼해서....

    

봉미산 856m 정상 2015년 6월 25일

봉미산 856m  2015년 6월 25일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설곡리와 양평군 사이에 위치한 산이다(고도:856m). 광주산맥과 차령산맥의 사이에 위치하여 용문산(1,157m)의 북쪽으로 이어진다. 봉황산이라고도 불리던 용문산의 뒤에 위치하여 봉황의 꼬리라는 뜻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경기도에서 오지에 속하는 지역으로 세상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뜻에서 속리산()이라 불리기도 하였으며, 산 정상에 연못이 있어 늪산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조선지지자료』에는 양평군 군내면() 관상리()에 봉미산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봉미산 동편에 있는 양평군 단월면 석산리와 산음리는 우리 농촌의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경기도에서 산촌마을로 지정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지명, 국토지리정보원)

백족산 402m  2015년 6월 29일 (등산로 입구의 무량사)

  무량사(無量寺)는 백족산 동쪽 기슭에 위치한 사찰이다. 기록에 의하면 무량사는 1921년 창건된 것으로 나오나, 일제시대 ‘사찰령’에 의해 주지가 관에서 임명한 사실을 고려할 때 청미면(장호원읍)에는 신흥사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아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그러나 1930년대 중반에 청미면에 신흥사 외에 ‘장호원교당’이 있었다고 전하며, 장호원교당이 현재 무량사의 전신인 보타사인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보원 스님이 1986년 부임하여 보타사라는 절 이름을 무량사로 바꾸고 절을 보수 중창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오늘날 무량사의 건물은 대부분 보원 스님 이후에 새롭게 건축된 것으로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다.

(원문보기 : http://blog.naver.com/toyou10123/127747266)

백족산 402m  2015년 6월 29일 (이때문인지 만나는 등산객마다 인사가 자연스럽다)

백족산 402m  2015년 6월 29일 (등로 곳곳에 세워진 시판)

백족산 402m  2015년 6월 29일 (정상)

   높이는 402m이다. 이천시에서 다섯번째로 높은 산이다. 100개의 발을 가진 지네가 살았다는 전설이 얽힌 정상 부근의 지네굴(굴바위)에서 백족산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청미천이 산 남쪽을 휘감아서 북쪽으로 흐르면서 충북 음성군과 경계를 이룬다. 《동국여지승람》에 산중에 석남사와 백족사가 있다는 기록이 남아 있지만 지금은 찾을 수 없다. 산행은 무량사 양옆 길을따라 가다 만나는 약수터를 기점으로 하여 원점 회귀하는 코스가 여러 개 있는데, 시간은 2시간에서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매년 봄이면 장호원읍의 명물인 복숭아나무에 꽃이 피어 장관을 이루기 때문에 많은 등산객이 찾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백족산 402m  2015년 6월 29일(정상)

  이산 정상에 있는 정상석 하나가 청미봉이라 되어 있는데 이는 역사를 잘 모르고 사용하는 일제의 잔재명칭이란 글이 있다. 이 글을 쓰신 분은 백족산 자락에 살고있는 장호원인들은 청미라는 말을 애써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적고, 청미봉(淸渼峰)이라니 기막히다라고 적고있다.  원문보기 : http://blog.daum.net/paulsong/15862223 

설성산 209m  2015년 6월 29일 (등로 입구 신흥사 앞 설성성지 안내판)

  이천의 성지 중 가장 뚜렷한 성의 형태를 보존하고 있어 성문지 외에는 전체의 윤곽을 대부분 식별할 수 있다. 신라 17대 내물왕시 왜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하여 축성했다는 설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설성산 209m  2015년 6월 29일 (신흥사)

  신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다. 신라 내물왕(재위:356∼402) 때 창건되었다고 한다. 설성()을 쌓은 장군을 위해 세웠다는 전설이 전하나, 당시는 신라에 불교가 들어오기 훨씬 전이므로 확실하지는 않다. 조선 후기까지의 연혁이 전하지 않아 절의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다. 오랫동안 폐사인 채 남아 있다가 1700년대 말에 중창되었다고 하며, 1918년에도 중창되었다. 1944년에는 수해로 절의 일부가 유실되자 주지 해송()이 중건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설성산 209m  2015년 6월 29일 (정상)

  설성산은 해발 390m 로 그리 높지 않으나 첩첩한 산줄기가 얽혀 험준한 지형을 이루고 있어 옛날 군사상의 요충지로 알려진 곳이며 산중에 이를 증명하는 축성연대 미상의 고성지가 남아있다. 설성이라는 명칭은 명을 받고 성을 쌓는데 이상하게도 성이 놓일 자리로만 띠를 두른 듯 백운이 내려있어 백운의 자취를 따라 성을 쌓았기 때문에 설성이라 이름했다고 한다. 선읍리 부락 근처에서 발견된 석조여래입상은 그 표현수법이 매우 뛰어난 유물로 평가 받고 있다. (이천문화관광 설성산)

설성산의 성 현재 복원 공사가 진행중이다.

  1984년 9월 12일 경기도기념물 제76호로 지정되었다. 설성산 주봉 능선과 동쪽 아래편 골짜기 약 2만~3만여 평을 에워싸고 있는 1km 길이의 석성으로, 북쪽 성벽에 인접한 신흥사()와 그 아래의 큰 계곡을 포함한 자연적인 지형조건을 이용하여 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험준한 산세와 절벽 등을 이용하여 쌓은 외벽은 높이가 4~5m에 이르는 곳도 있으며, 1.5~2m 높이의 내벽도 흔적이 비교적 뚜렷하게 남아 있어 성벽의 두께가 5m 정도의 폭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내외벽 사이에는 잡석을 다져넣어 견고하게 쌓은 흔적을 볼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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