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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관광 주문 엽서

강진, 정다산초당

공룡우표매니아 2013. 6. 3. 04:00

강진, 정다산초당

 

 

                                                                강진 : 정다산초당

  강진만의 서쪽을 감싸고 있는 만덕산(409m). 그 만덕산의 남쪽 기슭에 백련사가 자리잡고 있으며 약간 동서로 길게 펼쳐진 산줄기의 서쪽에 다산문화관이 있는 귤동과 다산초당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이 유배되어 11년간 머물면서 많은 책을 저술했던 곳이다. 중심 건물은 다산초당으로 원래는 초가집이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1958년에 외가인 해남 윤씨 문중에서 새로 지은 것으로 일자형의 작은 건물이다.

 

  정약용은 여유당(與猶堂) 등의 여러 호를 가지고 있으며, 천주교 이름으로는 요한(Johan)이라 하였다. 정조임금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으며, 유형원과 함께 수원성을 설계하고 거중기 등의 신기재를 이용하여 수원성(화성)을 쌓기도 했다.

 

  정조가 죽자 신하들의 모함을 받아 투옥되어 유배되었고, 그 후 18년 간의 유배생활 동안 그는 많은 저서를 남겼다. 정약용의 사상은 한국사상의 원형과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이 곳에서 11년 동안 머물면서 『목민심서』와 『경세유표』, 『흠흠신서』를 비롯한 500여 권에 달하는 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리고 이를 총정리한 『여유당전서』는 ‘철학’, ‘법제’, ‘종교’, ‘악경’, ‘의술’, ‘천문’,‘측량’, ‘건축’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장래에 도움이 될 학문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정약용은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다산초당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백련사 주지 아암 혜장과 자주 왕래하였다. 어느 날 다산은 백련사 주지로부터 자신의 아들 뻘인 초의선사를 소개받았다. 이렇게 시작된 두사람의 인연은 평생 동안 지속되었다. 특히 두 사람은 차를 통해 교감하였는데, 다산이 유배생활을 끝내고 한양으로 돌아간 뒤에도 초의는 항상 차를 만들어 다산에게 보내곤 하였다. 두사람의 차에 대한 깊고 해박한 지식과 애정은 그들이 남긴 시와 편지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정약용 덕분에 초의는 당대 유학자와 문인, 예술가와 교우할 수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추사 김정희였다. 추사 역시 차에 대해 매우 식견이 높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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