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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공룡학자, 조르주 퀴비에

공룡우표매니아 2008. 3. 24. 07:10

최초의 공룡학자, 조르주 퀴비에(Guvier. Ceorges 1769 ~ 1832  프랑스)

 

프랑스의 몽벨리아르에서 태어난 퀴비에는 박물학이 인생의 전부였다.어려서 부터 스케치북에다가 여러 종류의 동물을 그렸던 그는, 중등을 마치자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과학원에 들어가 자연과학을 공부했다. 19세에 과학원을 졸업한 그는 노르망디 해안 근처의 코 지방에서 1788년부터 1795년까지 어느 백작의 집에서 가정교사로 일하게 되었다. 1795년 여름 파리로 떠난 얼마후 왕립자연사 박물관의 조수가 되었고 1802년 마침내교수가 되었다.

                               조르주 퀴비에(Guvier. Ceorges 1769 ~ 1832  프랑스) 칼라트라이얼 5도색

 

가정교사 시절 노르망디 에서많은 동물을 수집하고, 해부하는 과정에서 얻은 충분한 학술적 경험은 비교학의 원리를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화석에도 관심을 가져, " 현존하는 코끼리와 화석 코끼리의 종류에 관한 보고서"  를 섰고, 여기에서 퀴비에는, 코끼리는 원래 화석이 발견된 장소에서 살았으며 이들의 죽음은 점진적인 기후변화가 아니라 갑작스러운 기후변화 탓이였다는 주장을 했다. 이 주장은 현재의 공룡멸종설과 일맥상통 하고있어 그의 뛰어난 관찰력과, 과학적, 학술적, 논리적인 면이 남달랐음을 알수 있는것이다.

 

퀴비에는 이후에도 화석연구를 계속하여 그 성과물을 1812년에 "화석 뼈의 연구" 라는 책으로 정리했다. 전 유럽에 산재한 화석표본과 자료를 설렵하고, 새로운 종의 화석에도 늘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곤 했다. 이러한 신념과 생활이 퀴비에로 하여금, 화석을 통해서고생물학의 세계로 이끌려 가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화석을 복원하는 일에도 비교해부학의 원리를 이용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과거의 동물을 복원 하는데 성공할수 있었다. 수많은 화석동물들이 그의 손을 거쳐 과거로부터 되살아났다.

 

퀴비에는 화석을 연구하던중 지질학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았다. 과거로 부터 소생한 동물들을 연대 순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퀴비에는 지구와 생물의 역사를 "대 이변설" 과 "종의 불변설" 로 설명 하였다.그러나 종의 불변설 만큼은 그의 생각이 잘못 되었다. 그의 뒤를 이어 나온 박물학자들이 그러한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

 

1800년 그가학술논문에서 언급한 중생대 파충류의 척추골 화석은 박물학자인 바슐레가 옹플뢰르 지방에서 채집한 것인데.  1808년 퀴비에는 이 화석을 두 종류의 신종 악어의 것이라고 소개하였다. 확실히 이들 화석의 일부는 악어의 것이였으나 육식공룡의 골격도 함께 기록하여 그림으로 남겼다. 이는 퀴비에가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한 실수였다. 그러나 그가 밝힌 익룡(Pterosaurs)의 모습은 기리남을 업적이다.

 

 

 

 

" 하늘을 나는 파충류는 아마도 두 종류라고 생각된다. 그들의 날개 역활을 했던 막은 단 하나의 손가락만으로 지탱 되었으며, 뭔가에 매어달릴 때에는 다른 세개의 손가락을 사용했다. 또한 설 때에는 뒷다리만을 사용했다. 얼굴에는 커다랗게 찢어진 입이 있었는데 이빨이 예리해서 곤충이나 작은 동물을 물기에 알맞았다."  날아다니는 파충류, 익룡을 퀴비에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는 독일의 바이에른 지방에서 발견된 뼈가 익룡의 것임을 확인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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