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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인 여행...1.009, 경기도 여주시 천송동, 여주 신륵사조사당과 보제존자석종.

공룡우표매니아 2024. 7. 27. 03:00

관 광 인  여 행...................1.009,  

여주시 천송동, 여주 신륵사조사당과 보제존자석종.

여주 신륵사조사당과 보제존자석종(驪州神勒寺祖師堂普濟尊者石鍾)

    1376년, 고려말의 고승 나옹은 회암사의 주지로 중창불사를 했다가 탄핵을 받아 유배를 떠났는데, 유배길에 신륵사에 들렀다가 그대로 입적하였다. 나옹의 제자들은 스승을 그대로 신륵사에서 화장한 뒤 나온 사리를 회암사와 신륵사에 나누어 부도탑(보제존자석종)을 조성했다. 조선불교계는 나옹의 스승인 범승(인도 승려) 지공(指空), 나옹, 그리고 두 승려의 공동제자인 무학을 3화상(三和尙)이라고 부르며 불교의 조사(祖師)로 추앙하였고 민간신앙의 대상으로도 여겼다. 그리하여 나옹이 입적한 신륵사에도 조사당(祖師堂)을 세워 3화상의 영정을 봉안하였다.

여주 : 여주 신륵사 조사당과 보제존자석종(驪州神勒寺祖師堂普濟尊者石鍾)

    신륵사. 여주시 북내면 봉미산(鳳尾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원효가 창건한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신라 진평왕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절이름을 ‘신륵’이라고 한 데는 미륵(彌勒) 또는 왕사 나옹(懶翁)이 신기한 굴레로 용마(龍馬)를 막았다는 전설에 의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그리고 고려 고종 때 건너편 마을에 나타난 용마가 걷잡을 수 없이 사나웠으므로 사람들이 잡을 수 없었는데, 이때 인당대사(印塘大師)가 고삐를 잡으니 말이 순해졌으므로, 신력(神力)으로 제압하였다고 하여 절이름을 신륵사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또한 이 절은 고려 때부터 벽절[甓寺]이라고도 불렸다. 이는 경내의 동대(東臺) 위에 다층전탑이 있는데, 이 탑 전체를 벽돌[塼]로 쌓아 올린 데서 유래한 것이다. 

    여주 신륵사 조사당(驪州神勒寺祖師堂) : 신륵사에 있는 조선 시대의 불전. 보물 제180호. 정면 1칸, 측면 2칸. 다포식 팔작지붕건물이다.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조사당은 덕이 높은 승려의 초상화를 모셔놓은 건물로, 신륵사 조사당에는 불단 뒷벽 중앙에 나옹을, 그 좌우에는 지공, 무학대사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장대석으로 한 벌로 쌓은 낮은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세웠다. 석단 위에 남향으로 세웠으며, 규모는 작지만 아담하다. 지붕 가구는 5량으로 구성했고 대들보 위에 가로재가 ‘井’자형으로 놓이고 그 위에 기둥을 세워 마루도리를 받게 한 특수한 구조이다. 내부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고 천장은 우물천장이며 뒤쪽으로 불단을 설치하여 영정을 봉안했다. 앞면은 6짝의 문을 달아 모두 열 수 있게 했다.

여주 : 여주 신륵사 조사당과 보제존자석종(驪州神勒寺祖師堂普濟尊者石鍾)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驪州神勒寺普濟尊者石鍾) : 신륵사 뒷편에 모셔져 있는 나옹의 사리탑으로, 널찍하게 마련된 단층 기단(基壇) 위에 2단의 받침을 둔 후 종 모양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돌을 쌓아 넓게 만들고 앞쪽과 양 옆으로 계단을 두었다. 탑신은 아무런 꾸밈이 없고,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불꽃무늬를 새긴 큼직한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솟아 있다. 고려 우왕 5년(1379)에 세운 것으로, 나옹이 양주 회암사 주지로 있다가 왕의 명으로 밀양에 가던 도중 이곳 신륵사에서 입적하니, 그 제자들이 절 뒤에 터를 마련하여 이 탑을 세워 두었다. 고려 후기의 석종형 부도 양식을 보여주는 좋은 작품이다. 보물 제228호. 이 석종을 중심으로 전면에 석등, 후면에 탑비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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