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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원용

공룡우표매니아 엄원용

우표전시 기념인 교류

최익철 베네딕도 신부 우표전시관 . 전시기념 엽서,

공룡우표매니아 2017. 8. 24. 04:08

최익철 베네딕도 신부 우표전시관 .  전시기념 엽서,

제64대 교황 성 그레고리오 1세.  제261대 교황 성 요한 23세. 

제262대 교황 성 바오로 6세(엽서 No.10 ~ 12)



 제64대 교황 성 그레고리오 1세(Gregorius Magnus).  (엽서No. 10)

  본명 그레고리우스 아니키우스(Gregorius Anicius) 가톨릭의 제64대 교황. 레오 1세에 이어 대교황의 칭호를 받은 2번째 교황이며, 중세 교황직의 아버지로 추앙받는다. 교사들의 수호성인으로 지정되었다. 축일은 9월 3일. 부유한 귀족 고르디아누스의 아들로 태어난 그레고리오는 로마에서 교육을 받았고, 랑고바르드족의 이탈리아 침략이 로마를 위협하고 있을 당시에는 로마의 장관이었다. 수도생활을 오랫동안 꿈꾸어 왔기 때문에 그는 574년경에 로마와 시칠리아에 수도원을 세우고 35세 경에 소도자가 되었다. 579년부터 585년까지 그는 콘스탄티노 플의 교황대사로 활약하다가, 5년 후에 자기 수도원으로 돌아온 뒤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수사(修士)가 교황으로 선출된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교회법령을 정비하고 무능한 성직자들을 해임시켰으며, 막대한 경비를 들여 자선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지혜롭게 교황청 재산을 관리했고, 랑고바르드족으로부터 포로들을 석방시켰으며, 부당한 박해를 받던 유대인들을 보호하고, 기근의 희생자들을 구호하였다. 593년 그는 랑고바르드족 침략군을 설득하여 로마를 평정시킴으로써 사람들로부터 평화의 수호자로 존경을 받았다. 영국의 한 역사가는 '중세 시대에 교황이 없었다면 중세의 혼란 상태, 불법, 혼잡이 어떠했을지 생각조차 불가능하며, 중세 시대 교황 중의 진정한 교황은 大 그레고리오 교황 뿐'이라고 서술했다. (다음 백과. 나무위키)

 제261대 교황 성 요한 23세 (Sanctvs Ioannes XXIII). (엽서No. 11)

  세속명 안젤로 주세페 론칼리 (Angelo Giuseppe Roncalli), 외모가 뛰어나거나 대중적인 쇼맨십이 있진 않았으나, 선함과 소박함, 진솔함을 무기로 인망을 얻고 존경받았다. 교황이 된 뒤에도 권위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소박함과 진솔함을 잊지 않았다. 그 때문에 교황으로서 권위가 없고 교회를 세속화시킨다고 바티칸의 추기경단 일부와 마찰도 컸지만, 교황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는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않았다. 살아 생전 이탈리아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은 선하신 교황(Il Papa Buono) 요한. 그리고 교황이 되기 전이나 후나, 실로 그 별명에 어울리게 산 교황이었다. 안젤로는 12살에 베르가모 신학교에 입학해 사제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으며, 1904년 사제로 서품받았다. 대학원에서 수학 중 베르가모의 주교비서로 임명되어 9년간 일했는데, 고향 베르가모는 롬바르디아의 공업도시로 공장 노동자들이 많은 곳이었다. 주교 비서로 일하면서 노동자들의 고충을 알게 되어 사회 문제에 관심을 쏟았다. 후에 요한 23세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열게 된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태도 때문에 근대주의자라는 오해를 받아 교황청으로부터 찍혀 있었다.  (다음 백과. 나무위키)

                                제262대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   (엽서No. 12)
  세속명 조반니 바티스타 엔리코 안토니오 마리아 몬티니(Giovanni Battista Enrico Antonio Maria Montini) 밀라노 대주교로 재직하던 1963년에 교황로 선출되었다. 교황으로서 바오로 6세가 처음 한 일은 요한 23세가 사망함으로써 중지된 제2차 바티간 공의회를 속개하라 명한 것이다. 이후 공의회가 폐막하자, 바오로 6세는 남은 재위기간 동안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성과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기울였다. 바오로 6세는 재위기간 동안 장거리 여행으로 외국을 순방하며 정력적으로 사목 활동에 전념해 '순례자 교황'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2대 뒤에 즉ㅇ위한 교황이 이 기록을 가뿐하게 갈아치웠다. 역대 교황 가운데서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교황은 당시 미국 대통령인 존슨 대통령에 의해 말려들어 점차 확대되어 가던 베트남 전쟁을 염두에 두고 유엔에서 평화를 주제로 한 연설문을 발표하였다. “ 더이상 전쟁은 안 됩니다. 두 번 다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평화, 우리 인류의 운명을 이끌어야 하는 것은 바로 평화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교황이 필리핀을 방문할 때 우리나라에도 와주실 것을 청했지만, 바오로 6세는 남북간의 첨예한 대립 때문에 오해를 살 여지가 있다며 고사했다고 한다. (다음 백과.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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