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우표매니아

엄원용

공룡우표매니아 엄원용

우표전시 기념인 교류

제2회 서초 취미우표전시회 (기념엽서)

공룡우표매니아 2012. 12. 11. 04:00

2 서초 취미우표전시회 (기념엽서)

                                                                      (주제 : 우리나라 역사)

 

 

일 시 : 2012년 7월 24일(화요일)~7월 28일(토요일)   장 소 : 서초구청 1층 서초플라자

주 관 : 서초구청  후 원 : 서울 서초우체국. 한벗우취회 

                                                                  광개토태왕비문

                    4면에 모두 44행 1,775자의 문자가 새겨져 있다.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비문을 한글로 풀이하면, 옛날 시조 추모왕이 나라를 창조하시었다. 북부여에서 나오셨는데, 천제(하늘의 임금)의 아들(天帝之子)이시고, 어머니는 하백녀(물의신의 딸)이시다. 알을 깨고 세상에 나시고, 나면서부터 성스러운 분이셨다. 수레를 타고 남으로 순행하시다가, 길에서 부여의 엄리대수(강)에 이르렀다. 왕이 나루에 이르러 말하길,  '나는 황천의 아들(皇天之子 - 가장 높은 하늘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하백녀(물의신의 딸)인, 추모왕이다. 나를 위해 갈대를 엮고, 거북은 떠올라라.' 하니  갈대가 이어지고, 거북이 떠올랐다. 그리하여 물을 건너게 되고,  비류곡의 홀본 서쪽의 성 위에서 도읍을 정하였다. 세상에서의 권세를 즐기지 않아, 하늘에서 황룡을 아래로 보내어 왕을 영접하니, 왕이 홀본 동쪽에서 용의 머리에 올라타고, 하늘로 승천하셨다. 추모왕의 유언을 세자 유류왕이 받들어 도(道)으로 다스리시니 나라가 흥하고 대주류왕이 나라를 받들어 이었다. 전하여 17대손에 이르러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 광개토대왕)] 에 이르렀다. 18세에 천자의 자리에 오르니, 영락대왕(永樂大王)이라고 불리셨다.  그 은혜로움이 황천(皇天 - 가장 높은하늘)과 같고, 무예와 위엄은 사해(四海 - 온세상)에 떨치었다.  그리하여 백성들이 평안히 그 생업(직업)에 종사할 수가 있었다. 나라는 부유하고, 백성은 번성하여, 오곡(여러 양식)이 풍성하였다. 삼십구세에 승하하시니, 갑인년 9월 29일에 안장하고 비석을 세워 그 공훈과 업적을 기록하여 새겨서, 후세에 보이는 것이다. 
(원문보기 : cafe.daum.net/hanryulove/IwYk/99807   한류열풍 사랑) 

                                                                     광개토태왕릉

  중국 지린 성[吉林省] 지안 현[輯安縣] 여산(如山) 남쪽 기슭에 있는 고구려의 기단식(基壇式) 돌무지무덤[積石塚]. 현재는 분구의 대부분이 무너져내린 기단부와 그 위층의 방단부(方壇部) 일부만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1990년 이래 중국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되어 복원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그 결과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 무덤의 동북 500m 거리에는 유명한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가 있다. 무덤의 규모, 근처의 건물터, 광개토왕릉비 등을 근거로 광개토왕의 능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다음 백과)

                                                              밀양 신불사 단군상

 자료 : www.aljago.com 민족사관 홈페이지 참고 하세요

                                                                   묘향산 단군굴

참고자료는 : http://cybernk.net/infoText/InfoNatureCultureDetail.aspx?direct=1&mc=BN0103&sc=A205&tid=BN010600032437 에서 보실수 있습니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

고조선 멸망 후 그 유민들이 경주로 와서 6촌을 이루어 살았다. 어느 날 6촌장이 나라를 세우기로 결정 하였는데 이 때 양산(남산) 나정 곁에 흰 말이 무릎을 꿇고 앉아 울고 있어서 그곳을 살펴보니, 알 한 개가 있었다. 알을 깨보니 사내아이가 나왔는데 사람들이 그를 목욕시키니, 몸에서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이 춤을 추며, 천지가 진동하고 해와 달이 더 밝아졌다. 이로 말미암아 아이의 이름을 혁거세라고 지었다. 얼마 뒤에 알영정 가에 계룡이 나타나 겨드랑이에서 계집아이를 낳았다. 태어난 곳을 따서 계집아이의 이름을 알영이라고 지었다. 사람들은 남산 서쪽 기슭에 궁궐을 짓고, 성스러운 두 아이를 받들어 길렀다. 기원전 57년에 혁거세를 왕으로 받들고, 알영을 왕비로 삼아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서라벌이라고 하였다.

                                                                      박혁거세릉

                                                                      치우천황

                                                                   환웅 과 왕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