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인 여행 ....... 506. 경기도 광주시의 광주조선백자도요지
관광인 여행 ....... 506.
경기도 광주시의 광주조선백자도요지(廣州朝鮮白磁窯址)
경기광주 : 광주조선백자도요지(廣州朝鮮白磁窯址)
조선 초기에는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도자기를 전국의 제작소로부터 토산공물로 진상받아 사용했으나 15세기 후반부터 수요량이 증가하고 품질관리와 운반의 편리를 위하여 한양과 가까운 경기도 광주에 국가가 직접 경영하는 백자 제작소를 설치했다. 백자제작을 위한 백토(고령토)를 전국의 백토 산출지로부터 공급받아 사옹원 소속의 경공장인 사기장 380명이 제작을 했다. 백자를 굽기 위한 땔나무는 분원 주변에 있는 나무를 사용했으며 10년을 주기로 땔나무가 많은 주변지역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분원의 위치는 광주시의 퇴촌면·실촌면·초월면·도척면·경안동·오포읍에 분포하고 있다. 17세기말 광주시 내에 땔나무가 고갈되면서 강원도에서 북한강을 따라 수송되는 나무를 사용하고 분원을 고정시키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다음백과)
경기광주 : 광주조선백자도요지(廣州朝鮮白磁窯址)
사기 제작에서 원료인 백토와 함께 필수불가결한 재료는 연료로 사용되는 번목이었다. 분원은 설치 당초부터 번목의 조달을 위해 일정한 산지를 공급받았느데, 그것이 이른바 분원시장절수처(分院柴場折受處)이다. 분원이 이 일대를 중심으로 설치되었기 때문에 분원 시장은 광주를 중심으로 지급되었다. 광주의 분원시장은 대개 퇴촌면, 실촌면, 초월면, 도척면, 경안면, 오포면 등 6개면에 걸쳐 있었으며, 이들 6개면은 계속 분원에 소속되어 있었다. 따라서 분원도 대개는 이 지역 안에서 이동되었다. 분원은 약 10년에 한 번씩 시장 안의 수목이 무성한 곳을 따라 이전하였고, 한번 분원이 설치되어 번목을 채취한 곳은 수목이 다시 무성해질 때까지 비워두었다가 다음에 다시 그곳에 분원을 설치하여 수목을 채취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